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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 시(詩, Poem)56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내 가슴에 쿵쿵거린다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너였다가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다시 문이 닫힌다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감동시 감.. 2024. 7. 7.
[당신 나 만나서 행복했나요] 양애희 시 당신 나 만나서 행복했나요양애희 뿌리의 인연으로 만나줄기의 만남으로 운명을 맺고꽃으로 피어난 사람아꽃잎처럼별처럼하늘로 적셔오는 당신 나 만나서 행복했나요 꽃에서 꽃으로풀에서 풀로생(生) 앞에 서면불꽃처럼 피어 오르는 내 안의 목숨과도 같은 당신 나 만나서 행복했나요 가슴 바다저 깊은 곳까지 떨게 할 내 생애 못잊을이 우주상 단 한 사람 당신 나 만나서 행복했나요 눈물버섯처럼 가만히 싸안고사랑 안 출렁이는가슴 비밀번호 똑같은내가 사랑하는 당신 나 만나서 행복했나요 온 세상 붉게 칠할 만큼당신 처음 내 안에 살림 차린 그 순간부터벅찬 설레임으로난 당신 만나 행복했는데Ⅰ. 시를 읽는 즐거움 양애희 시인의 시 "당신 나 만나서 행복했나요"는 깊은 사랑과 그로 인한 감정의 울림을 담고 있는 작품입니다. 시의 각 .. 2024. 6. 30.
이니스프리의 호도(湖島) / 윌리엄 예이츠, 자연은 인간의 영원한 피안 이니스프리의 호도윌리엄 예이츠 이제 나는 일어나 가리라.이니스프리로 가리라.그곳에 진흙과 잔가지 엮어 작은 오두막 짓고,거기에 아홉이랑 콩밭 갈고 꿀벌 한 통 치리라.그리고 벌소리 요란한 숲 속의 빈터에서 혼자 살리라 ​그러면 거기에 평화가 깃들겠지, 평화란 천천히 방울져 내리는 것이니아침의 베일을 뚫고 귀뚜라미 우는 곳까지 방울져 내리는 것이니그곳에서 한밤중은 온통 희미하게 빛나고, 대낮은 자줏빛으로 불타오르고​그리고 저녁은 홍방울새 날개로 가득 차겠지. ​이제 나는 일어나 가리라. 밤이나 낮이나 항상호수물이 가득하게 기슭에 찰싹이는​ 소리 들리니,도로에 섰을 때나 잿빛 포도 위에 섰을 때나,그 소리 내 마음 깊은 곳에 들린다​.​The Lake Isle of InnisfreeI will arise a.. 2024. 6. 23.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 한탄할 그 무엇이 두려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와 숙녀』박인환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볍게 부서진다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세월은 가고 오는 것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 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늙은 여류 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등대…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우리.. 2024. 6. 16.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 윤동주 『별 헤는 밤』 별 헤는 밤윤동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둘 새겨지는 별을이제 다 못 헤는 것은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별 하나에 사랑과별 하나에 쓸쓸함과별 하나에 동경과별 하나에 시와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2024. 6. 7.
나의 님은 어디에 있는가? 만해 한용운의 「님의 침묵」, 다시 읽는 명시 님의 침묵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으로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 2024. 6. 1.
깜밥 / 김옥종 시인의 겸허한 삶의 자세 깜밥​너무 바짝엎드리지 않기사랑하는 마음 없이들어붙지 않기 뜨거운 열정에 어설프게 몸 내어주지 않기속살 뽀얀 윗집 언니 질투하지 않기벗겨진 채로 두려워하지 않기 맨손으로 받아줄 때물컹거리지 않기입술에 맡겼을 때 바삭한 척 않기 김옥종 시집 「민어의 노래」에서유년의 추억을 마주한 듯, 길섶에서 곱게 핀 들꽃 무더기를 만난 듯,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유성을 발견한 듯, 김옥종 시인의 ‘깜밥’은 안개에 갇혀있던 내 감각들을 깨웠다. '깜밥'을 감상하다 보면 그의 겸허하고 모나지 않고 가식 없는 삶을 엿보는 것 같다. 그가 삶아온 삶이 누룽지처럼 구수할 것이었으나 티 내지 않고 소임을 다하는 모습이 선하게 다가온다. 그의 시는 언어의 유희 속에서 감칠맛이 난다. 그의 독특한 이력만큼이나 맛깔스럽다. 시인은 196.. 2024. 5. 26.
사랑, 그 천 개의 무색 그리움 아! 이슬 되어, 바람 되어마음 하나 심장 깊숙이 심어허구헌 날, 온통 그리움뿐휘젓고 돌아치고 달궈지고 몰아세우는너는 누구더냐. 잊고 살자 다짐해도혼절의 무게로 다가와버릇처럼 세포마다 문신 새기고내 안에 오직 너로만 퐁퐁 샘솟게 하는,너는 대체 누구더냐. 눈 멀어 귀 멀어붉은 꽃물 모다 모아옴팡지게도 스미게 하는 너사랑하고도 외롬을 질끈 동여맨사랑, 그 천 개의 무색 그리움. 무딘 침묵의 어깨를 넘어담장의 넝쿨 장미, 오지게도 달게 피듯사랑, 그 천 개의 그리움붉은빛으로 가슴팍에 빙빙허구헌 날, 나를 놓아주질 않는구나. 양애희 詩 시인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그리움을 쌓아가는 일이라는 걸 마음 절절히 짜내 엮었습니다.시인의 모든 일상 속에 각인되어 함께 하는 그리움은 그가 형상화시킨 홀로그램인지도 모르.. 2024. 5. 14.
세월이 가면 /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모더니즘 시인 박인환 박인환의 세월이 가면>은 1955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전쟁의 상흔이 남아있던 쓸쓸한 시대에 쓰인 시입니다. 당시 시대 상황 속에서 삶의 가치와 의미를 상실한 채 인생의 중압감과 무기력함에 젖은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당대의 최고 멋쟁이었고 명동에서 예술인들과 어울리며 시를 짓고 노래하며 풍류를 즐기는 낭만 가객이었던 박인환 시인은 31살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아쉬움을 남겼습니다.지금 그 사람의 이름은 잊었지만그의 눈동자 입술은내 가슴에 있어. 바람이 불고비가 올 때도나는 저 유리창 밖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과거는 남는 것여름날의 호숫가가을의 공원그 벤치 위에나뭇잎은 떨어지고나뭇잎은 흙이 되고나뭇잎에 덮여서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 2024. 4.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