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의 침묵 |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으로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들은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 한용운의 시 '님의 침묵'의 전문
Ⅰ. ‘님의 침묵’이 전하는 울림
한용운 시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님의침묵’은 그의 시집 제목이기도 하며,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후의 아픔과 그리움을 담은 명시입니다.
이 작품에서는 먼저 ‘님’이 떠났음을 알리고, 그와의 아름다웠던 과거를 회상하면서 이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님’과의 약속과 추억들을 그리워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아픔 속에서도 작가는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으로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고, 슬픔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님은 갔지만 나는 아직 님을 보내지 않았다’며 자신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님’이 살아 있음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주제는 불교 철학과도 관련이 있으며,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과 역사적 배경 등 다양한 요소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이 작품은 당시 일제 강점기 시대의 상황과 민족분단 문제 등을 반영하기도 하여 많은 독자들에게 공감과 감동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이 작품은 단순한 연애시가 아니라 인간의 삶과 죽음, 사랑과 이별, 그리고 종교와 철학 등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어 문학적 가치가 매우 높은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Ⅱ. 만해의 생애와 그를 기리는 사람들
한용운(韓龍雲:1879∼1944)은 법명(法名)은 용운(龍雲), 법호(法號)는 만해로, 승려이자 시인이며 3·1만세운동 때 불교계 대표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이어 유명한 공약삼장을 작성했습니다.
1926년 시집 <님의 침묵>을 출간하여 일제 치하의 민족혼을 일깨웠으며 불교의 대중화와 개혁에 앞장섰습니다. 1944년 5월 9일 성북동 심우장(尋牛莊)에서 66세를 일기로 입적했으며, 그의 독립 정신과 문학세계를 기리기 위해 매년 6월 홍성문화원에서 만해제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그가 님의 침묵을 탈고했던 강원도 인제군 내설악 입구 백담사에는 그의 시비와 함께 만해기념관이 있으며, 심우장 입구에도 ‘님의 침묵’ 시비와 동상이 있습니다. 홍성의 생가와 동국대학교 등 전국의 여러 곳에 시비가 세워져 그를 기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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