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밥
너무 바짝
엎드리지 않기
사랑하는 마음 없이
들어붙지 않기
뜨거운 열정에
어설프게 몸 내어주지 않기
속살 뽀얀 윗집 언니
질투하지 않기
벗겨진 채로
두려워하지 않기
맨손으로 받아줄 때
물컹거리지 않기
입술에 맡겼을 때
바삭한 척 않기
김옥종 시집 「민어의 노래」에서
유년의 추억을 마주한 듯, 길섶에서 곱게 핀 들꽃 무더기를 만난 듯,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유성을 발견한 듯, 김옥종 시인의 ‘깜밥’은 안개에 갇혀있던 내 감각들을 깨웠다. '깜밥'을 감상하다 보면 그의 겸허하고 모나지 않고 가식 없는 삶을 엿보는 것 같다. 그가 삶아온 삶이 누룽지처럼 구수할 것이었으나 티 내지 않고 소임을 다하는 모습이 선하게 다가온다.
그의 시는 언어의 유희 속에서 감칠맛이 난다. 그의 독특한 이력만큼이나 맛깔스럽다. 시인은 1969년생으로 전라남도 신안군에 딸린 섬 지도에서 출생했단다. 한국인 최초 K-1 이종격투기 선수 출신이다. 2015년 여름 [시와 경계] 신인상에 당선되었다. 광주전남 작가회의 회원이다. 2020년에는 첫 시집 『민어의 노래』를 출간했다.
지금은 지방 도시에서 식당을 한단다. 음식 재료를 손질하며 시를 짓는다. 음식을 만들 듯 정성을 담아 시를 짓는다. 시가 담긴 음식은 어떤 맛일까. 그가 만든 음식을 먹어보고 싶다.
그의 시집 『민어의 노래』에는 요리에 쓰이는 생선과 식재료에 관한 시가 많다. 요리하며 시 짓는 일이 그의 일상이다. 살이가 곧 시가 되었다. 시와 더불어 시처럼 사는 시인이 부럽다. 일상에서 체득하고 건져낸 시어들은 그래서 더 맛깔스러운 모양이다. 그가 만드는 음식이든 시든 푹 우려낸 육수처럼 구수하게 익어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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