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 해외봉사] 굶는 것도 일상이 되면 내성이 생긴다
혼자 살다 보니 뭘 해 먹기가 귀찮다. 그래도 평일에는 아침에 과일주스로 요기를 하고 점심은 학교 카페테리아에서 해결한다지만, 저녁이 늘 걱정이다. 특히 주말이나 휴일에는 세끼를 혼자 다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먹거리 걱정이 크다. 퇴근길에 쇼핑몰에 들러 김치와 야채, 생선 통조림을 챙겨 간단하게 찌개를 끓여 먹는 게 가장 편하고 손쉬운 방법이다.
혼자 사는 남자의 먹거리 고충
가능하면 패스트푸드나 밀가루 음식을 먹지 않으려 하지만, 외국에서 혼자 사는 남자에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 거라도 끼니 거르지 않고 챙겨 먹을 수만 있다면 다행이다. 혼자 사는 여자들은 건강해지는 반면, 혼자 사는 남자들은 대부분 건강을 상하기 쉽다고 한다. 그만큼 남자들은 뭘 챙겨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쉬는 날에는 아침과 점심을 동시에 해결하는 브런치가 제격이다. 라면도 괜찮고, 식은 밥이 있다면 볶아먹는 것도 좋다. 취향이나 품위, 영양 같은 것은 생각할 수도 없다. 그냥 끼니만 때우면 된다. 요즘은 쇼핑몰보다는 퇴근길에 동네 재래시장을 둘러보는 게 더 재밌다. 상인들이 조그만 좌판을 놓거나 구멍가게를 열고 장사를 하는데 과일, 채소, 육류, 생선 등 갖출 건 다 갖추고 있다.
손쉽게 요리할 수 있는 초록입홍합이나 오징어, 새우 등은 내 단골 장거리다. 냉장고도 없이 난전에서 파는 생물이라 잘못 고르면 상한 것이 많이 섞여 있어 낭패를 볼 수 있다. 가격도 일반 육류나 과일보다는 비싼 편이다. 딱 한 번 먹을 정도의 양만 사야지, 너무 많이 사면 먹지 못하고 버리기 일쑤다.
학창시절의 자취생활
학창시절부터 자취생활을 해서 요리는 무엇이든 자신이 있다. 다만 귀찮아서 하지 않을 뿐이다. 중학생 시절에도 학교가 너무 멀어 자취를 해야 했다. 집에서 면 소재지에 있는 학교까지 걸으면 꼬박 3시간이 걸리는 거리여서 어쩔 수 없이 입학하자마자 학교 소재지에 방을 얻어 자취생활을 했다. 부모님이 땔감을 마련해 줘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밥을 지어먹고 학교엘 다녔다.
토요일이면 집에 가서 1주일간 일용할 양식과 반찬을 챙겨서 일요일 오후에 자취방으로 돌아오곤 했다. 중학교 3학년 무렵에는 부모님께서 석유풍로를 하나 마련해 줘 신세계를 만난 기분이었다. 땔감이 떨어지면 인근 야산에 가서 나뭇가지나 솔방울 등을 주워와야 했는데 그런 수고로움을 덜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불을 직접 지피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이 있었다. 하지만, 아궁이에 불을 넣지 않으니 난방이 되지 않는 불편함과 겨울에 따뜻한 물을 쓸 수 없다는 단점도 있었다.
어쩌다 보니 고등학교를 서울로 가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고향에서 서울까지 가려면 배를 타고 목포로 나가 목포역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가는 길이 가장 편리했다. 고교시절도 물론 자취생활이었다. 구로동의 어느 허름한 쪽방에서 시작된 자취생활은 3년 동안 대여섯 곳의 자취방을 전전하다가 수원 못미처 의왕역 인근에서 졸업을 할 수 있었다.
한번은 어머님이 싸주신 김치 한 양동이를 들고 그 머나먼 길을 간 적도 있었다. 열차에서 김칫국물이 넘쳐 냄새 때문에 곤욕을 치르기는 했지만, 그놈 덕에 한동안 반찬 걱정 없이 지낼 수 있었다. 어묵이나 콩나물, 멸치 등이 그때는 주메뉴였다. 요리하기가 쉬워 간을 맞춰 연탄불에 끓이면 그만이었다. 그 고마운 연탄은 은은한 불로 초보자가 조리하기에 딱 좋은 화력이었다.
연탄불이 난방은 물론, 온수까지 해결해 줬으니 자취생들에게는 수호천사였다. 대신 잘 관리해 불을 꺼트리지 않아야 한다. 자취를 하면 도시락을 싸갈 수가 없다. 중학교 시절에도 그랬지만, 고교시절에도 반찬도 그렇고 귀찮아서 도시락까지 챙기지는 못했다. 그 시절에 도시락만 좀 챙겼어도 키가 지금보다는 더 자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굶는 것도 습관이 되면 익숙해진다
이곳 학생들을 보니 내 학창시절과 별반 다르지 않다. 도시락을 준비해 온 학생들은 카페테리아나 야외 벤치에서 그걸 까먹는다. 그렇게라도 챙겨 먹는 학생들은 나은 편이다. 그도 안되는 학생들은 그냥 굶는 것이다. 굶는 것도 습관이 되면 익숙해진다. 모두들 즐거워하는 점심시간에 혼자 밖으로 나가 운동장 구석이나 정원에서 서성이며 시간을 때우는 것이 일상이 되면 내성이 생긴다.
그래도 군대에서는 먹을거리 쪽에서는 걱정이 없었다. 군인들의 건강을 고려해 균형 잡힌 식단에 규칙적인 식사를 할 수 있어서 내 인생에서 가장 끼니를 잘 챙겨 먹은 기간이었다. 더욱이 오후에는 빵과 우유를 간식으로 나눠줘서 배고픈 줄 모르고 살았다. 몸무게도 무려 10㎏이나 늘 정도였으니, 그전에 얼마나 식사를 챙기지 못하는 생활이었는지 가늠이 간다.
결혼하기 전, 그리고 직장생활 후반부 15년을 늘 혼자 살았는데 특별히 뭘 챙겨서 해 먹거나 식사를 꼬박꼬박 챙기진 못한 듯하다. 요즘은 먹거리가 풍부하고 다양한 패스트푸드와 즉석요리, 밀키트 등이 선보이고 있어 맘만 먹으면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지만, 지금도 왠지 그런 식재료나 음식에는 손이 가지 않는다.
많은 세월을 혼자 자취를 했는데, 먹는 것에 진심인 적은 없었다. 그냥 대충 때우거나 그도 귀찮으면 굶는 쪽을 선택한다. 요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를 위해 무엇을 열심히 만들어 본 적은 없다. 그러나 누군가를 위해 하는 요리는 즐겁다. 친구들과 어울려 여행을 간다거나 캠핑을 하면 요리를 도맡아 하곤 한다.
이곳 학교 선생님들과 종종 식사를 하는데, 한국의 삼겹살을 좋아한다. 내가 잘 익힌 고기를 상추에 싸 된장과 마늘, 고추를 얹어주면 얼마나 맛있게 먹는지 모른다. 잘 먹어주는 모습을 보면 절로 행복해진다. 내가 진정으로 나 아닌 타인을 위해 잘할 수 있는 일이 몇 가지나 있겠는가.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1년 간 필리핀 해외봉사, 무사히 마치고 귀국합니다 (46) | 2024.07.04 |
---|---|
저출산 고령화로 국가 소멸 위기에 처한 한국, 대책은 없는가? (38) | 2024.07.02 |
필리핀의 이발관 풍경, 어릴 적 우리네 모습과 다를 바 없네 (30) | 2024.06.27 |
아직도 가시지 않은 6·25 전쟁의 상흔 (4) | 2024.06.26 |
가족이란 무엇인가? SNS로 외로움을 달래주는 가족들의 따뜻한 마음 (37) | 2024.06.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