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 해외봉사] 이발하고 보니 머리카락이 들쑥날쑥, 하지만 엄지 척!
사람의 머리카락은 개인별 유전적 특성과 건강 상태 등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보통 하루에 0.3~0.5mm씩 자란다고 한다. 한 달에 약 1.0~1.5cm씩 자라는 셈이다. 그렇다고 무한정 자라는 건 아니다. 머리카락의 수명은 2~6년이다. 1m 전후가 되면 수명이 다하는 것이다. 두피에는 10만 개 이상의 모공이 있다. 날마다 50~100여 개의 머리카락이 빠지고 새로 나기를 반복한다.
헤어스타일이 개인의 인상을 좌우하는 비중이 크기에 머리카락을 관리하는 것도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대부분 단골 가게를 정해 머리를 관리하곤 한다. 나는 2개월 주기로 이발은 한다. 커트하는 정도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2개월 주기가 적당하다. 국내에 있을 때는 주로 동네 미장원을 이용했다. 미용계에 막 발을 들여놓은 초년생들이 주축이 되어 운용하는 곳이다.
그들은 어느 정도 숙련도가 쌓이면 독립해서 개업하거나, 벌이가 좋은 곳으로 옮겨 간다고 했다. 일반 미용실은 남성 커트 비용이 1만 원을 넘는데, 거기는 8천 원으로 착한 가격이다. 미용사들도 젊고 싹싹하다. 날렵한 동작으로 머리를 잘라주고, 샴푸까지 해주는 손놀림이 민첩하다. 종종 외국인 미용사도 있다. 한국에서 직업인으로 정착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서 그 자리까지 왔을 거라는 생각에 대견해 보였다.
미용실에 밀려난 한국의 이발관
그곳 미용실을 알기 전에는 동네 목욕탕에 딸린 이발관엘 다녔었다. 이발을 하고 개운하게 목욕까지 할 수 있는 편리함이 좋았다. 목욕탕이 개업하면서 터줏대감으로 들어온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이발사였다. 70대 중반의 어르신은 그 연세에도 일하면서 용돈벌이를 하는 자기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분은 내가 이발하러 갈 때마다 미용실이 이발관을 잠식했다고 통탄을 했다. 이‧미용법 개정 과정에 정부에서 미용사의 손을 들어주는 바람에 바리깡이 가위에 점령당했다는 것이다. 실제로도 그렇다.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국의 이용 업소는 16,118개소인 반면, 미용업소는 172,708개소다. 미용업소가 10배 넘게 많다. 80년대만 해도 이용 업소가 더 많았는데 법령이 개정되면서 반전된 것이다.
1998년 통계를 보면 실상을 알 수 있다. 그 이전 통계는 찾을 수가 없다. 1998년 기준 이용 업소는 31,140개소다. 그런데 2022년까지 24년 동안 절반 가까이 줄어든 것이다. 반면 미용업소는 80,018개소로 같은 기간 2배가 넘게 늘어났다. 평생을 이발관을 지켜온 목욕탕 이발사 어르신의 넋두리가 이해가 간다.
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문을 닫은 동네 목욕탕은 업종을 바꿔버렸다. 그 이발사도 비자발적으로 은퇴를 했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이발관은 우리 곁에서 하나, 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이다. 오랜 세월 서서 이발한 탓에 다리 관절이 좋지 않다던 그분은 어떤 방법으로 건강관리를 하고 계시는지 궁금해진다.
한국에서 사라져 가는 이발관, 필리핀에선 활황입니다
이곳 필리핀에 와서 벌써 세 번째 이발을 한다. 한길이나 골목의 좁은 틈을 비집고 서너 평 규모로 자리 잡은 이발관은 우리네 70~80년대 이발관의 모습 그대로다. 손님용 의자 2~3개에 종업원도 2~3명이다. 의자 앞 벽에 붙은 거울과 이발 도구, 그리고 여러 가지 헤어스타일의 모델 사진들…
내 어린 시절 동네마다 하나씩 있던 이발관이 꼭 이런 모습이었다. 이발사가 큰 손으로 머리를 움켜쥐고 수동식 바리깡으로 머리에 벌초하듯 무조건 빡빡 밀었다. 헤어스타일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기계 날 사이에 머리가 물려 뽑히는 고통만 없었으면 좋았다. 이발소마다 걸려있던 이국적인 서양화와 푸시킨의 ‘삶’이라는 시가 기억 속에 또렷이 남아 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설움의 날을 참고 견디면
즐거운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
모든 것은 일순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다시 그리워지리니
- 알렉산드르 푸시킨 ‘삶’
어린 나이에 시구에 담긴 내용이야 다 이해하진 못했겠지만, 고단한 생활 속에 희망이란 것을 가늠할 수가 없어서 왠지 씁쓸한 감정을 자아내게 했다.
이용업이 한국에서는 사양산업인데 반해 필리핀에서는 활황이다. 이발소에 갈 때마다 손님들이 줄을 서 있다. 이발사들도 대부분 젊다. 이용기술을 배우려는 젊은이들이 많단다. 필리핀의 이발관은 면도날을 갈던 가죽띠나 머리를 감겨주는 세면도구는 없다. 단지 머리카락만 잘라준다.
이발비는 75페소, 우리 돈으로 1,800원 정도 된다. 우리나라 1980년대 초중반 무렵의 이발비다. 벽에 붙은 사진 속의 헤어스타일을 보고 맘에 드는 모델을 찜하면 작업이 시작된다. 20대 초반의 젊은 이발사가 분사기에 든 물을 잔뜩 뿌리고 조심스럽게 머리카락을 자르기 시작한다. 2~30분이면 끝나는 작업이다.
사진 속의 헤어스타일은 멋있어 보이는데 이발을 하고 난 내 모습은 아주 낯선 사람이다. 이곳에 와 첫 번째 이발을 했을 때는 옆머리와 뒷부분을 심하게 올려 친 바람에 신병대 군인 같은 모습이었다. 두 번째는 머리를 너무 짧게 잘라 중고교시절의 스포츠형이었다. 말 그대로 필리핀 스타일이었다. 근데 이번에는 양쪽 옆에 길고 짧은 머리가 들쑥날쑥하다.
하지만 이미 잘린 머리카락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발사에게 뭐라고 한들 서로 기분만 상할 뿐이다.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서 거울을 보면서 젊은 이발사를 향해 원더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이발사가 환하게 웃는다. 잔뜩 긴장해서 작업을 했을 터인데, 멋있다고 해주니 기분이 얼마나 좋았겠는가. 꾸준히 기능을 연마해 멋진 이발사로서 그의 앞날에 영롱한 빛이 가득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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