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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시58

정철의 『장진주사』 술 권하는 노래, 술로 푸는 인생 장진주사(將進酒辭)송강 정철 한 잔 먹세그려또 한 잔 먹세그려 꽃 꺾어 셈하면서 무진무진 먹세그려 이 몸이 죽은 후에는 지게 위에 거적 덮어꽁꽁 졸라 묵여 실려 가거나, 곱게 꾸민 상여 타고 수많은 사람들이 울며 따라가거나, 억새풀, 속새풀, 떡갈나무, 버드나무가 우거진 숲에 한번 가기만 하면누런 해와 흰 달이 뜨고, 가랑비와 함박눈이 내리며,회오리바람이 불 때 그 누가 한잔 먹자고 하겠는가? 하물며 무덤 위에 원숭이가 놀러 와 휘파람을 불 때뉘우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一杯一杯 復一杯(일배일배 부일배) 折花作薵 無盡杯(절화작주 무진배) 此身已死後(차신이사후) 束縛藁裏屍(속박고리시) 流蘇兮寶帳(유소혜보장) 百夫緦麻哭且隨(백부시마곡차수) 況茅樸樕白楊裏(황모박속백양리) 有去無來期(유거무래기)白月兮黃日(백.. 2024. 7. 28.
만해 한용운 ❮알 수 없어요❯ 식민시대의 막막함 속에서 느끼는 비애 알 수 없어요만해 한용운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垂直)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塔) 위의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뿌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구비구비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 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詩)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Ⅰ. 알.. 2024. 7. 21.
『커피를 내리며』 ​허영숙 시, 커피 향에 스미는 일상 커피를 내리며​허영숙 ​커피를 내리는 일처럼사는 일도 거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둥글지 못해모난 귀퉁이로 다른 이의 가슴을 찌르고도아직 상처를 처매주지 못 했거나 ​우물 안의 잣대를 품어하늘의 높이를 재려는 얄팍한 깊이로서로에게 우를 범한 일들 ​아주 사소함까지도질 좋은 여과지에 거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는 일은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마주보는 것처럼마음과 마음은 온도 차이로 성에를 만들고닦아내지 않으면등을 보여야 하는 슬픈 배경 가끔은 아주 가끔은가슴 밖 경계선을 넘어와서눈물 나게 하는 기억들 이 세상 어디선가내게 등을 보이고살아가는 배경들이 있다면걸러내서 향기로 마주하고 싶다 ​커피 여과지 위에 잊고 산 시간들이따뜻하게 걸러지고 있다Ⅰ. 시를 읽는 즐거움 허영숙 시인의 시 '커피를 내리며'는 삶의 여.. 2024. 7. 14.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내 가슴에 쿵쿵거린다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너였다가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다시 문이 닫힌다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감동시 감.. 2024. 7. 7.
[당신 나 만나서 행복했나요] 양애희 시 당신 나 만나서 행복했나요양애희 뿌리의 인연으로 만나줄기의 만남으로 운명을 맺고꽃으로 피어난 사람아꽃잎처럼별처럼하늘로 적셔오는 당신 나 만나서 행복했나요 꽃에서 꽃으로풀에서 풀로생(生) 앞에 서면불꽃처럼 피어 오르는 내 안의 목숨과도 같은 당신 나 만나서 행복했나요 가슴 바다저 깊은 곳까지 떨게 할 내 생애 못잊을이 우주상 단 한 사람 당신 나 만나서 행복했나요 눈물버섯처럼 가만히 싸안고사랑 안 출렁이는가슴 비밀번호 똑같은내가 사랑하는 당신 나 만나서 행복했나요 온 세상 붉게 칠할 만큼당신 처음 내 안에 살림 차린 그 순간부터벅찬 설레임으로난 당신 만나 행복했는데Ⅰ. 시를 읽는 즐거움 양애희 시인의 시 "당신 나 만나서 행복했나요"는 깊은 사랑과 그로 인한 감정의 울림을 담고 있는 작품입니다. 시의 각 .. 2024. 6. 30.
이니스프리의 호도(湖島) / 윌리엄 예이츠, 자연은 인간의 영원한 피안 이니스프리의 호도윌리엄 예이츠 이제 나는 일어나 가리라.이니스프리로 가리라.그곳에 진흙과 잔가지 엮어 작은 오두막 짓고,거기에 아홉이랑 콩밭 갈고 꿀벌 한 통 치리라.그리고 벌소리 요란한 숲 속의 빈터에서 혼자 살리라 ​그러면 거기에 평화가 깃들겠지, 평화란 천천히 방울져 내리는 것이니아침의 베일을 뚫고 귀뚜라미 우는 곳까지 방울져 내리는 것이니그곳에서 한밤중은 온통 희미하게 빛나고, 대낮은 자줏빛으로 불타오르고​그리고 저녁은 홍방울새 날개로 가득 차겠지. ​이제 나는 일어나 가리라. 밤이나 낮이나 항상호수물이 가득하게 기슭에 찰싹이는​ 소리 들리니,도로에 섰을 때나 잿빛 포도 위에 섰을 때나,그 소리 내 마음 깊은 곳에 들린다​.​The Lake Isle of InnisfreeI will arise a.. 2024. 6. 23.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 한탄할 그 무엇이 두려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와 숙녀』박인환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볍게 부서진다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세월은 가고 오는 것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 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늙은 여류 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등대…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우리.. 2024. 6. 16.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 윤동주 『별 헤는 밤』 별 헤는 밤윤동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둘 새겨지는 별을이제 다 못 헤는 것은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별 하나에 사랑과별 하나에 쓸쓸함과별 하나에 동경과별 하나에 시와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2024. 6. 7.
나의 님은 어디에 있는가? 만해 한용운의 「님의 침묵」, 다시 읽는 명시 님의 침묵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으로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 2024. 6.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