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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섬진강 300리 벚꽃길, 팝콘처럼 터지는 봄의 축포

by 램 Ram 2025.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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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는 온통 꽃천지다. 가는 곳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지난주에 한두 그루 개화가 시작되는가 싶더니, 이번 주 들어 시내는 물론 천변을 따라 벚꽃이 팝콘처럼 일제히 터지기 시작했다.

 

색깔이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매화나 산수유꽃과 달리 무리 지어 피어나는 벚꽃의 연분홍색은 사람들의 마음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하다. 매화나 산수유꽃이 봄을 알리는 전령이나 화신이었다면, 벚꽃은 봄을 여는 축포와도 같다.


섬진강 300리 벚꽃길 ⓒ임경욱
섬진강 300리 벚꽃길 ⓒ임경욱


전국적으로 유명한 섬진강 300리 벚꽃길

어제는 봄볕이 좋아 섬진강 벚꽃길을 따라 한가로이 드라이브를 했다. 섬진강 300리 벚꽃길은 전국적으로 유명해 벚꽃이 피는 시기에는 온 나라에서 상춘객들이 몰려든다. 관련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축제도 하지만, 올해는 여러지역에서 발생한 악마 같은 산불로 인해 모든 행사를 취소했다.

 

다행히 만개 시기에 거의 모든 산불이 진화되어 꽃놀이에 나선 사람들도 안심이 되고 덜 미안할 것이다. 그러나 도로는 한산하다. 그 많던 관광버스도 보이질 않는다. 손님을 맞기 위해 장을 펼친 노점상들은 흥겨울 것 없는 음악만 틀어놓고 나무그늘에서 졸고 있다. 봄인데도 세상이 시름시름 앓고 있는 듯하다..

 

구례구역 앞에서 출발해 섬진강자전거길과 더불어 이어진 섬진강 벚꽃길은 드라이브 코스로 제격이다. 군데군데 쉼터에서 한숨을 돌리고 가도 좋다. 종종 차량 옆으로 자전거의 은륜이 벚꽃 아래서 반짝이며 미끄러지듯 지나간다. 모든 만물은 시절인연이 있다는 것이 신비롭다.


벚꽃이 절정인데도 한적하다 ⓒ임경욱


아이들과 함께 가면 좋을 섬진강 어류생태관과 수달생태공원

문척면을 지나고 간전면에 들어서면 간전교 옆으로 섬진강 어류생태관과 섬진강 수달생태공원을 만날 수 있다. 섬진강 어류생태관은 섬진강의 민물고기를 체계적으로 보전하고 생태전시를 위해 20083월에 개관했단다. 우리나라 5대 강 중 유일하게 1급수를 유지하고 있는 섬진강의 깨끗한 자연환경과 본래의 강 모습을 간직하고자 운영되는 곳이다.

 

섬진강 수달생태공원은 강변에 단층으로 아름다운 전시관이 개방감을 더해 주며, 수달사, 어린이놀이터, 홍매화 산책로, 카페, 전망대, LED조명시설 등 즐길거리가 다양하다. 천연기념물 제330호인 수달에 대한 다양한 생태정보를 제공하고 59종의 다양한 식물을 학습하고 관찰할 수 있다.

 

아이들과 함께 방문해 자연 속에서 자연의 중요성을 공부할 수 있는 생태체험 및 휴식공간이다. 도시에서는 아이들이 마땅히 갈만한 곳이 없어 아파트 우리에 갇혀 사는데, 조금 시간을 할애하면 멋진 풍경 속에서 체험과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라 손자 손녀를 데리고 방문하고 싶은 곳이다.

 

강줄기를 따라 이어지는 벚꽃길은 남도대교를 지나 광양 다압의 매화마을을 만날 수 있다. 매화 개화시기가 늦어 꽃 없는 축제라고 울상이었는데, 매화는 게으름을 피우는 녀석 말고는 끝물이라 처연하다. 내 마지막 모습도 이렇게 처연하지 않고 동백꽃처럼 뚝 지고 말면 좋으련만, 남은 날의 내 모습이 두렵다.

 

매화마을에 들러 매실차 한잔을 얻어 마시고 강길 따라 아래로 아래로 흘러간다. 강물의 흐름에 속도를 맞추려니 가속을 할 수가 없다. 뒤따라 오던 많지 않은 차들이 성급하게 추월해 간다. 꽃구경 와서도 바쁜 모양이다.


벚꽃 너머로 남도대교가 보인가 ⓒ임경욱
벚꽃 너머로 남도대교가 보인가 ⓒ임경욱


내 영혼에 아름다움을 더해준 벚꽃

차는 어느새 섬진강 하구 광양과 하동을 잇는 섬진교에 이르렀다. 느리게 왔는데도 2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하동으로 건너가 재첩국 맛집이라는 곳을 찾아 재첩국에 밥 한술을 말아먹었다. 조그만 조개에서 어떻게 이렇게 시원하고 개운한 맛이 나올 수 있는지, 재첩국 한 그릇에 온몸이 개운해진다.

 

하동에서 구례로 올라가는 길은 반대편 길보다 벚나무가 많지 않다. 도로를 확장하느라 고목들이 많이 사라졌다. 길도 옛길과 달리 쌩하고 지나갈 수밖에 없다. 시골에서 구경하고 머물 수 없게 도로를 새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

 

악양의 평사리공원에 잠깐 들렀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몇 번 방문해 머물다 갔던 곳이라 옛 생각이 새록새록하다. 아이들과 넓은 백사장에서 공놀이도 하고 모래성도 쌓던 일이 어제 일만 같다. 그 아이들이 벌써 성인이 되어 직장인으로, 가장으로 열심히 살아간다. 세월이 무상하다.

 

공원 캠핑장에는 평일인데도 한가로이 캠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몇몇 있다. 나무그늘 아래 의자를 펴고 앉아 강줄기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이 망망하다. 강은 쉼 없이 어쩌면 영원히 흐르는데, 우리는 끝을 향해 흐른다. 무량한 세월의 파고를 헤치고,

 

강변 따라 듬성듬성 펼쳐진 벚나무길에는 꽃들이 봄볕을 견디지 못하고 절정을 향해 치닫는다. 벚꽃은 아름다운 영혼, 정신적 사랑, 삶의 아름다움이라는 꽃말처럼 오늘 하루 나의 영혼에 아름다움을 더해준 것 같아 좋다. 2주일을 버티지 못한다는 벚꽃이 좀 더 오래 피어 있기를 살랑이는 봄바람에게 부탁해 본다.


이 글은 2025. 4. 3.() 오마이뉴스(https://omn.kr/2cvgw)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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