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에세이

퇴직 후 어디서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 된다면

by 램 Ram 2025. 3. 10.
반응형

농촌에서 1년 살기를 시작합니다

개구리도 놀라서 깨어난다는 경칩인데, 봄이 3월 초입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성댄다. 강원도에서는 폭설이 내리고, 이곳 남쪽도 며칠째 한기를 잔뜩 머금은 봄비가 몸을 움츠리게 한다. 우리도 이러할진대 차가운 봄비에 마음을 열지 못하는 식물들은 얼마나 초조할까?

 

퇴직 전부터 꿈꾸던 농촌생활

▲1년 동안 농촌살이 할 처소 ⓒ 임경욱
▲ 1 년 동안 농촌살이 할 처소  ⓒ  임경욱

 

지난해부터 벼르고 준비하던 농촌살이를 위해 비 내리는 궂은날인데도 세간살이를 챙겨 이곳 구례군의 한적한 시골로 거처를 옮겼다. 혼자 살기에 적당한 크기의 원룸인데, 웃풍은 좀 있지만 깨끗하고 아늑해서 마음이 편하다. 평야지에 위치해 사방이 트이고, 지리산 노고단이 한눈에 보이는 평화로운 곳이다.

 

추적거리는 빗속에서 세간을 옮겨 정리하고 나니 고향에 온 듯 푸근하고 안온하다. 속단할 수 없지만, 1년간 머물기에는 대체로 만족스럽다. 직장에서 퇴직하고 전원생활을 위해 농촌에 터까지 잡아놨는데, 여의치 않아 차선책으로 농촌에서 1년 살아보기를 선택한 것이다.

 

1년 후에 내 생각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으나, 일단 계획하고 결행한 일이니 마음은 가볍고 좋다. 도시의 그 삭막한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수많은 차량들이 내뿜는 매연, 친해지기 힘든 거리의 풍경들에서 벗어난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삶의 빈틈이나 생의 허전함을 사람으로 채우려는 건 무리한 욕심이다. 나이 들면 감정의 찌꺼기들, 생각의 차이를 서로 이해하고 공감할 수는 있어도 동의할 수는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이 들면 사람 대신 번잡스럽지 않은 자연을 찾고 책과 음악, 그리고 취미 생활을 즐기는 모양이다. 말없는 그것들이 품은 기억 저편의 추억과 끝 모를 미지의 편안함이 그곳에 함께 있어서 좋은 것일 게다.

 

이 나이에 내 삶에서 지키려 애쓰며 영위해야 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합리성과 익숙함으로 최적화된 세상에서 인간정신은 갈수록 쪼그라들고 있다. 무언가에 연연하고 집착하고, 날마다 닦달해 오는 속도에 치이고 살이에 들볶여 사래처럼 목울대에 걸린 신산스러운 일상을 냉수로 씻어 내리곤 한다.

 

삶은 살아갈수록 커다란 환멸에 지나지 않는다. 환멸을 짐짓 감추기 위하여 우리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말을 했지만, 끝내하지 않은 말이 더 많다. 환멸은 납 가루처럼 몸속에 쌓이고, 하지 못한 말은 가슴속에서 병으로 굳어져 간다. 오랜 세월을 끝없는 환멸 속에서 살다가 끝끝내 자기의 비밀을 간직한 채 우리는 죽어간다.

 

자연의 인간의 영원한 피안

아파트에 갇혀 하루종일 노트북에 코를 박고 살다 보니 자연은 늘 내게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피안처럼 느껴졌다. 자연에서 자연인처럼 자유롭게 사는 것이 내 몸이나 마음을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마지막 헌신인 것이다.

 

▲숙소 인근에서 캔 푸성귀 ⓒ 임경욱
▲ 숙소 인근에서 캔 푸성귀  ⓒ  임경욱

 

조그만 텃밭에 채소를 심어 자급자족하면서 들짐승처럼 산과 들로 뛰어다니다 보면 1년이 금방 지날 것 같다. 아내가 일 때문에 함께 하지 못해 못내 아쉽지만, 아이들에게 내 계획을 알려줬더니 연휴를 꼽으며 놀러 오겠다고 야단들이다. 온 가족이 자연 속에서 한 번씩 모이는 것도 기대된다.

 

하룻밤을 지내고 맞는 아침은 늘 맞이하는 아침과 사뭇 달랐다. 공간적 변화가 주는 새로움도 있지만, 바뀐 환경이 가져다주는 상큼함과 경이로운 풍경이 주는 매력은 나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사방으로 둘러선 산 중턱으로 운무가 진을 친 채 대지에서 피어오르는 봄기운을 몸으로 받고 있다.

 

이 비 그치고 운무가 걷히면 온 세상은 매화, 산수유, 벚꽃, 개나리 등 앞다퉈 피는 봄꽃으로 꽃천지가 될 것이다. 도시의 회색 그림자에 갇혀 있던 사람들도 화신을 따라 꽃무더기 속으로 나들이를 할 것이다.

 

봄은 이렇게 겨울을 인내하며 꽃으로 세상을 열어줄 준비를 해온 것이다. 사람들은 그 안에서 즐기면 되는 것이다. 지난겨울 그 암울했던 기억들을 바람에 날려버리고 새롭게 시작하면 되는 것이다.

 

처음 끓여보는 냉이된장국

▲생애 처음으로 끓인 냉이된장국 ⓒ 임경욱
▲ 생애 처음으로 끓인 냉이된장국  ⓒ  임경욱

 

오후에는 비가 그친 틈을 타 들로 나갔다. 논두렁을 따라 닿은 과수원 풀더미에서 냉이와 어린 쑥 등 풋나물을 찾아 캤다. 크고 작은 냉이가 서로 엉켜 땅 속 깊숙이 뿌리를 박고 계절을 건너오고 있었다. 생명의 신묘함이 처음 만나는 일처럼 감동을 준다. 이 시절에 무언들 나를 감동시키지 않겠는가.

 

캐 온 나물은 깨끗이 다듬고 씻어 국을 끓인다. 된장 한 숟갈을 넣고 마른 멸치 몇 마리도 넣는다. 구수한 향이 봄의 전령이 되어 미각을 자극한다. 어릴 적 어머니 손맛이 그리워지는 냄새다. 아내가 종종 끓여주던 그 향이 맞다. 요리는 손맛이 아니라 기억에서 끄집어내는 모양이다.

 

나는 냉이멸치된장국을 끓여본 적이 없는데, 기억을 소환해 재현시켜 낸 것이다. 맛도 나쁘지 않다. 어머니 손맛이나 아내의 맛까지는 아니어도 냉이된장국 본연의 기본적인 맛이 살아있다. 그래서 경험과 연륜이라는 것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경험과 연륜을 잘 살려 올 한 해 열심히 농사지으며, 농촌생활을 즐겁고 슬기롭게 해 나가야겠다.

 

 

* 본 기사는 2025. 3. 6.(목) 오마이뉴스(https://omn.kr/2cgoa)에도 게재되었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