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이트 소녀 |
박후기 |
나는 아르바이트 소녀,
24시 편의점에서
열아홉 살 밤낮을 살지요
하루가 스물다섯 시간이면 좋겠지만
굳이 앞날을 계산할 필요는 없어요
이미 바코드로 찍혀 있는
바꿀 수 없는 앞날인 걸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봄이 되면 다시 나타나는
광장의 팬지처럼,
나는 아무도 없는 집에 가서
옷만 갈아입고 나오지요
화장만 고치고 나오지요
애인도 아르바이트를 하는데요
우린 컵라면 같은 연애를 하지요
가슴에 뜨거운 물만 부으면 삼 분이면 끝나거든요
가끔은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러 이 세상에 온 것 같아요
엄마 아빠도 힘들게
엄마 아빠라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지 몰라요
아르바이트는
죽을 때까지만 하고 싶어요
박후기의 시 <아르바이트 소녀>는 현대 사회에서 특히 젊은 세대가 느끼는 불안정한 삶, 반복적인 일상, 그리고 희망과 체념의 교차점을 감각적으로 그려낸 작품입니다.
시는 주인공인 '아르바이트 소녀'의 시선을 통해 사회 구조와 개인의 삶을 비추며 여러 상징과 은유를 사용해 묘사하고 있습니다.
Ⅰ. 시의 내면 속으로
“24시 편의점에서 열아홉 살 밤낮을 살지요”
주인공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삶을 묘사합니다. 이는 단순한 직업적 서술을 넘어, 편의점이라는 공간이 현대 사회에서 대표적인 일시적이고 반복적인 노동의 상징으로 사용됩니다. ‘열아홉 살 밤낮’은 청춘의 시간을 일에 빼앗긴 현실을 강조합니다.
“하루가 스물다섯 시간이면 좋겠지만”
이 구절은 노동과 개인적 삶의 균형이 무너진 상태를 암시합니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에서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희망이 드러나지만, 이는 결국 불가능한 바람임을 자각합니다.
“이미 바코드로 찍혀 있는 바꿀 수 없는 앞날”
바코드는 상품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상징입니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삶도 상품처럼 규격화되고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태에 놓여 있음을 나타냅니다.
“애인도 아르바이트를 하는데요 / 우린 컵라면 같은 연애를 하지요”
사랑조차도 즉석에서 이루어지고 빨리 끝나는 컵라면 같은 것으로 표현됩니다. 이는 깊이 있는 관계를 형성하기 어려운 현대인의 삶과 감정의 단면을 드러냅니다. 뜨거운 물을 붓고 삼 분 만에 완성되는 컵라면은 즉흥적이지만 쉽게 식는 관계의 상징입니다.
“엄마 아빠도 힘들게 / 엄마 아빠라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지 몰라요”
부모의 역할 역시 끊임없는 노동처럼 느껴진다는 시각을 제시합니다. 이는 가족이라는 관계조차 현대 사회에서 피로한 일로 여겨질 수 있음을 함축합니다.
“아르바이트는 죽을 때까지만 하고 싶어요”
삶 전체를 아르바이트라는 은유로 표현하며, 노동과 삶의 경계가 흐릿한 현대인의 고단함을 극단적으로 드러냅니다. 이는 삶 자체가 끝없는 노동의 연속이라는 비관적이지만 현실적인 인식을 보여줍니다.
이 시는 청춘의 고단함과 현대 사회의 비정규성, 그리고 삶의 무게를 간결하고 날카로운 언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반복적이고 무기력한 일상 속에서도 주인공은 자신을 팬지처럼 다시 피어나는 존재로 묘사하며 희미하지만 꺼지지 않는 생명력과 의지를 보여 줍니다.
이 작품은 단순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속한 사회의 축소판을 보여줍니다. 이는 독자에게 자신의 삶과 환경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제공합니다.
Ⅱ. 작가의 세계
박후기(본명 박홍희)는 1968년 경기도 평택에서 태어난 시인이자 작가입니다. 그는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2003년 문학잡지 《작가세계》를 통해 등단하며 문학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박후기의 작품 세계는 일상 속에서의 고단함, 사회적 약자의 현실,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을 조명하며, 강렬한 감성과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대표 시집으로는 《종이는 나무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 《격렬비열도》, 《엄마라는 공장 여자라는 감옥》 등이 있으며, 산문집과 소설도 출간했습니다. 그는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 청년층, 가족의 삶을 시로 다루며 깊은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이러한 공로로 2006년 신동엽문학상과 2011년 김만중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시 <아르바이트 소녀>에서도 그의 특유의 예리한 통찰과 서정성이 돋보이며, 현대 사회의 노동 현실과 청년 세대의 불안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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