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회록(懺悔錄) |
윤동주 |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속에
내 얼굴이 남어 있는 것은
어느 왕조(王朝)의 유물(遺物)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가
나는 나의 참회(懺悔)의 글을 한줄에 주리자
- 만(滿) 이십사(二十四) 년(年) 일(一) 개월(個月)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든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懺悔錄)을 써야 한다
- 그 때 그 젊은 나이에
웨 그런 부끄런 고백(告白)을 했든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어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隕石)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속에 나타나온다
Ⅰ. 다시 새기는 참회록
윤동주의 시 「참회록」은 깊은 자기반성과 삶의 고통스러운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이 시는 일제강점기의 어두운 시대적 배경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행위를 성찰하며 느끼는 부끄러움과 죄책감을 시인의 섬세한 언어로 표현한 작품입니다.
1.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의 얼굴
첫 연은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이라는 이미지로 시작합니다. 이는 녹슬고 오래된 거울이 마치 과거의 유물처럼 시대의 흐름과 인간의 흔적을 담고 있음을 상징합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은 시인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는 매개체가 됩니다.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가"라는 구절은 자신이 처한 현실의 고통과 그 안에서 느끼는 부끄러움을 드러냅니다. 이는 단순히 개인적인 죄책감이 아니라, 역사적·민족적 정체성의 상실에서 비롯된 깊은 자책으로 볼 수 있습니다.
2. 참회의 글과 젊음에 대한 고백
두 번째 연에서는 시인이 자신의 젊음을 돌아보며 한 줄의 참회의 글로 요약하려 합니다.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든가"라는 문장에서, 시인은 자신의 삶을 기쁨이 아닌 슬픔과 반성으로 채워졌음을 인정합니다. 이는 한 개인의 내면적 고뇌뿐 아니라, 일제강점기라는 민족적 고난 속에서 느끼는 무력감과 부끄러움을 내포합니다.
"내일이나 모레나"라는 표현은 앞으로도 참회가 반복될 것임을 암시하며, 시인의 끊임없는 성찰과 자아의 정화를 향한 의지를 보여줍니다.
3. 밤마다 거울을 닦는 행위
세 번째 연에서는 "거울을 닦는다"는 반복적인 행위가 등장합니다. 이는 단순히 거울을 깨끗이 하려는 행동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비추고 반성하려는 시인의 끊임없는 노력과 의지의 표현입니다.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라는 구절은 간절함과 진지함을 더욱 강조합니다. 자신을 정화하고자 하는 시인의 열망은 거울 속에서 비치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으로 이어집니다.
4. 슬픈 사람의 뒷모양
마지막 구절에서 거울 속에 나타나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은 시인이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입니다. 이는 자신이 가진 과거의 죄책감과 현실의 고통스러운 민족적 상황을 상징합니다.
특히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모습은 시인의 고독과 비극적 운명을 암시합니다. 운석은 하늘에서 떨어진 비극적인 존재로, 시인의 고통스러운 삶의 여정을 은유합니다.
윤동주의 「참회록」은 개인적·역사적 차원에서의 반성과 참회의 과정을 그린 작품입니다. 시인은 단순히 자신을 책망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삶과 시대적 아픔을 깊이 성찰하며 끊임없이 더 나은 인간으로 변화하려는 노력을 담아냅니다.
이 작품은 윤동주의 다른 시들처럼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민족적 정체성을 고민하는 시인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독자에게도 반성과 성찰의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Ⅱ. 「참회록」의 탄생 배경과 작가의 고뇌
「참회록」은 1942년에 쓰였으며, 이는 일제강점기 말기, 조선이 일본의 강압적인 지배 아래 있었던 암울한 시기입니다. 윤동주는 당시 일본 제국주의의 압박 속에서 자신의 민족적 정체성과 개인적 삶을 고민하며 고뇌하던 청년이었습니다. 이 시는 그의 내면 깊은 곳에 자리한 자아 성찰과 민족적 고통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1. 시대적 배경
① 일제강점기 말기(1942년)
1942년은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로, 일제는 조선을 더욱 강력하게 억압했습니다. 일본어 사용 강요, 창씨개명, 조선인 강제 징용, 군사 동원 등으로 인해 민족 정체성의 상실과 극심한 억압이 심화된 시기였습니다. 윤동주는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 끊임없이 고민하며 시를 통해 민족적 슬픔과 개인적 고뇌를 표현했습니다.
② 지식인의 고뇌
윤동주는 지식인으로서 강점기의 비극을 뼈저리게 느꼈고, 자신의 글과 시에 대한 책임감을 무겁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민족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자책감과, 일본의 지배에 협력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현실적 한계에서 오는 내적 갈등에 고통받았습니다.
2. 윤동주의 삶과 시 창작 배경
① 연희전문학교 시절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현재 연세대학교) 문과에서 수학하며 문학적 재능을 키웠습니다. 그러나 그는 창작 활동을 통해 기쁨을 누리기보다는, 현실의 암울함과 무력감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그의 시는 대개 개인적 참회와 민족적 슬픔을 담고 있으며, 당시의 어두운 현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참회록」 역시 이러한 배경 속에서, 자신의 삶과 행동에 대한 반성과 더불어 민족적 비극에 대한 고뇌를 시로 승화한 작품입니다.
② 해외 유학과 심화된 고통
윤동주는 1942년에 일본으로 유학하여 교토 도시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습니다. 그러나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고, 민족적 정체성과 지식인의 책임 사이에서 더욱 고뇌했습니다. 이 시기는 그의 내면적 고통이 극대화된 시기이며, 이러한 갈등은 그의 시에서 잘 드러납니다.
3. 「참회록」과 그 의미
윤동주는 「참회록」을 통해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① 자기 성찰
그는 자신이 민족의 고난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무력감과 죄책감을 담아, 자기 자신을 철저히 성찰합니다. 이는 단순히 개인적 차원에서 끝나지 않고, 민족의 정체성을 되찾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으로 확장됩니다.
② 역사적·민족적 죄의식
자신의 존재가 "욕된" 것은 단지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일제에 의해 무기력해진 조선인 전체를 대표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이러한 감정이 개인의 참회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민족적 각성과 연대를 촉구하는 데 이르기를 바랐습니다.
③ 고단한 지식인의 책임감
윤동주는 민족과 개인의 삶을 동시에 고민하며, 자신을 끊임없이 돌아보고 행동을 다짐합니다. 그는 자기 고백을 통해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담았습니다.
4. 고단했던 말년
윤동주는 1943년,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었습니다. "항일 사상 고취"라는 이유로 혹독한 고문을 당했고, 1945년 2월 16일 형무소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는 생전 민족 해방을 보지 못했지만, 그의 시는 해방 후 조선의 문학과 역사를 상징하는 유산으로 남았습니다.
윤동주의 「참회록」은 단순한 개인적 반성이 아니라, 식민지 시대의 아픔과 민족적 고난 속에서 느끼는 고뇌의 표현입니다. 이는 일제강점기라는 어두운 시대와 맞물린 시인의 고통스러운 삶을 깊이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윤동주는 자신의 내면적 갈등과 민족적 아픔을 진솔한 언어로 담아,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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