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들녘에 서서 |
홍해리 |
눈멀면
아름답지 않은 것 없고
귀먹으면
황홀치 않은 소리 있으랴
마음 버리면
모든 것이 가득하니
다 주어버리고
텅 빈 들녘에 서면
눈물겨운 마음자리도
스스로 빛이 나네.
Ⅰ. 시가 전하는 울림
홍해리의 시 ‘가을 들녘에 서서’는 마음을 비움으로써 얻는 내면의 충만함과 평온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독자는 삶의 본질과 아름다움에 대한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1. 눈멀면 아름답지 않은 것 없고/귀먹으면 황홀치 않은 소리 있으랴
첫 구절은 감각을 초월한 세계를 암시합니다. 시각과 청각처럼 외부 세계를 인식하는 감각을 차단하면, 오히려 편견 없이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로써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아름답고, 귀에 들리는 모든 소리가 황홀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깨달음을 줍니다. 이는 세상을 보는 관점의 중요성을 드러냅니다.
2. 마음 버리면 모든 것이 가득하니
여기서 "마음 버림"은 집착과 욕망,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욕심을 비우고 욕망을 내려놓으면, 오히려 내면이 풍요로워지고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상태가 됩니다. 불교의 "무아(無我)"나 "공(空)"의 철학과도 연결되며, 진정한 만족과 자유는 마음을 비울 때 온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3. 다 주어버리고 텅 빈 들녘에 서면/눈물겨운 마음자리도 스스로 빛이 나네
마지막 연은 실천적 깨달음을 보여줍니다. 가진 것을 모두 내려놓고 '텅 빈 들녘'처럼 무소유의 상태에 서게 되면, 비로소 내면의 진정한 빛이 드러난다는 의미를 전합니다. "눈물겨운 마음자리"는 내려놓음의 과정에서의 슬픔이나 아픔을 표현하면서도, 그것조차도 결국 밝게 빛나게 된다는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Ⅱ. 시가 전하는 메시지
이 시는 가을 들녘이라는 자연을 배경으로 인간 내면의 깨달음을 그려냅니다. 가을은 수확과 동시에 소멸을 상징하며, 들녘은 무한히 펼쳐진 공간으로 인간의 내면세계를 비유합니다. 홍해리 시인은 이러한 자연적 이미지를 통해, 집착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는 것이 진정한 충만함과 평화를 가져다준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 시는 현대인의 삶에서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물질과 욕망에 치우친 삶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비워가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심리적 풍요와 삶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Ⅲ. 작가의 삶과 문학
홍해리 시인은 1942년 충청북도 청원에서 태어난 한국의 중견 시인으로, 1969년 첫 시집 『투망도』를 통해 문단에 등단하였습니다. 그는 고려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였으며, 오랜 기간 영어 교사로 근무하면서 시 창작 활동을 이어왔습니다.
홍해리는 풍부한 감성적 표현과 자연을 중심으로 한 작품 세계를 펼쳐왔으며, 주요 시집으로 『황금감옥』, 『독종』, 『금강초롱』, 『치매행』 등이 있습니다. 그의 시는 자연과 인간, 그리고 내면의 성찰을 다룬 것으로 평가받으며, 생생한 이미지와 철학적 깊이를 겸비하고 있습니다. 그는 현재 도서출판 움의 대표이자 《우리시》 편집인으로 활동 중이며, 한국 문학 발전에 지속적으로 기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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