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북작가 이기영의 장편소설 <고향>은 일제 강점기 하층민들의 고통과 현실극복 의지를 그린 작품으로, 리얼리즘 문학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본 작품은 충청남도 원터 마을을 배경으로 식민지 수탈 경제와 맞물린 지주와 소작인들의 갈등을 그린 농촌소설의 백미로 평가됩니다.
리얼리즘 문학의 백미
이기영의 <고향>은 일제강점기 농촌사회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리며, 농민들의 경제적 몰락과정과 삶의 고통을 사실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프로문학의 대표적인 작가 이기영의 사회주의 리얼리즘 성향이나 이념적 궤적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작품으로, 일제 강점기 카프계 작품 중 최고라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김희준이라는 매개적 인물을 내세워 농민의 계급적 각성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작품에서는 동경 유학생 출신인 김희준이 학자금난으로 학업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소작농으로 일하면서 농민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김희준은 자신의 필명이 된 작품 <민촌>의 지식인 청년의 관념적 한계를 극복하여 만들어진, 방황과 갈등을 겪는 살아 있는 인물로 작품 속 농민들은 김희준을 통해 계몽되어 갑니다. 또한, 이 작품에서는 '두레'를 매개로 하여 농촌 사회의 단결을 호소했다는 점도 특징적입니다.
일제 강점기 농민 계몽운동의 발판 구축
이러한 요소들을 바탕으로 <고향>은 독자에게 식민지 시대 이중적인 착취에 시달리고 있는 농민들의 궁핍상과 수탈상을 거짓 없이 그려내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인간성이 회복된 새로운 공동체의 구축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합니다.
마름 안승학은 그의 본부인을 서울로 보내 자식들을 교육시키도록 하고 자신은 첩 '숙자'와 함께 삽니다. 안승학과 '숙자'는 딸 '갑숙'이를 이씨 문중으로 시집보내려 하다가 '갑숙'과 '경호'와의 관계를 알고 앓아눕습니다. '경호'는 읍내의 상인인 권상필의 아들로 알려졌으나 사실은 구장집 머슴 곽 첨지의 아들이었던 것입니다. '갑숙'이는 가출하여 공장의 직공으로 취직합니다.
풍년이 들었으나 소작료와 빚진 것을 제하면 농민에게 돌아오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갑숙'이와 친했던 '경호'는 집을 나와 생부를 찾고 역시 공장에 취직합니다. 수재가 나서 집이 무너지고 농사를 망칩니다. 김희준을 중심으로 소작인들은 마름 안승학에게 소작료를 감면해 줄 것을 요구하나, 안승학은 이를 거절합니다. 이때 공장에서도 갑숙(옥희)을 지도자로 한 노동 쟁의가 벌어지며, 김희준은 이를 돕게 됩니다. 이후 김희준과 안갑숙은 결혼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됩니다.
시대적 상황이 만들어낸 사실주의 문학
〈고향〉은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으로 쓰여진 최고의 소설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브나로드 운동이 한창이던 시기에 나왔지만, 브나로드 주창자들과는 달리 문화운동으로서 농민계몽이 아니라 생계투쟁으로서의 농민운동을 강조합니다. 이른바 혁명적 프롤레타리아의 이데올로기를 바탕에 깔고 노동쟁의와 소작쟁의,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지도자상을 보여 주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사회상황의 갈등 문제는 지배자에 대한 피지배자의 투쟁에 의해서만 해결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카프에서 요구하는 도식에 맞추기 위하여 많은 작위성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또한, 희준과 갑숙의 만남에서 보는 바와 같이 둘만의 개인적 애정보다 다른 사람을 위한 희생적 동지애가 중요하다는 관념적 원칙을 내세워 역시 프로문학다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악덕 마름의 딸 갑숙이 공장 노동자로의 변모하여 소작인들의 집단 쟁의가 벌어졌을 때의 그녀가 보여준 행동은 지나치게 작위적이고 형상화되었습니다.
식민시대에 지식인의 참모습
카프 운동에 참여한 이기영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몰입되기보다는 그의 작품〈서화〉와 〈고향〉을 통해 실천적 지식인의 면모가 더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초라한 모습으로 고향에 귀환한 비루한 지식인의 모습을 넘어서는 계몽운동을 통해 실천적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카프 운동이 한창 거세던 시기에 그가 세간의 논쟁에 비켜서서 〈고향〉을 연재할 수 있었던 것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창작 기술과 당파성의 문제로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예술을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병립하는 독자적인 영역으로 개념화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고향〉은 식민시대에 지식인이 농촌사회를 개조하기 위해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가를 적극적으로 제시했습니다. 이 작품은 자신의 실존을 짓누르는 부정적 정념을 혁명에의 열정으로 전화하고자 하는 작가의 정치적 무의식이 강하게 작동했음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작가의 세계
이기영(李箕永, 1895∼1984)은 소설가로서 일제강점기와 해방기에 활동했습니다. 충남 아산군 배방면 회룡리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천안의 기독교 계열 학교인 봉명학교를 졸업하고 1915년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 세이소쿠가쿠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귀국한 뒤에는 1918년부터 영화여자고등보통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습니다.
1924년 단편소설 <오빠의 비밀편지>로 문단에 데뷔하였으며, 카프(KAPF)에 가입하여 활발한 창작 활동을 펼쳤습니다. 대표작으로는 <서화>, <배따라기>, <쥐 이야기>, <대지의 아들>, <인간수업>, <어머니>, <두만강> 등이 있습니다.
이기영은 향년 90세로 사망할 때까지 북한 문단의 중심에 놓여 있으면서 꾸준한 창작을 해낸 작가였습니다. 그는 월북 직후 1945년 9월 평양의 조선프롤레타리아 예술연맹 결성에 주역을 맡았습니다. 이듬해 5월에 발족한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의 초대위원장으로 뽑혔습니다. 사망 당시까지 북한의 문예총(문학예술총동맹) 위원장 자리에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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