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의 영토(領土) |
이해인 |
기도는 나의 음악
가슴 한복판에 꽂아 놓은
사랑은 단 하나의
성서러운 깃발
태초(太初)부터 나의 영토(領土)는
좁은 길이었다 해도
고독의 진주를 캐며
내가
꽃으로 피어나냐 할 땅
애처로이 쳐다보는
인정(人情)의 고움도
나는 싫어
바람이 스쳐가며
노래를 하면
푸른 하늘에게
피리를 불었지
태양에 쫓기어
활활 타다 남은 저녁노을에
저렇게 긴 강(江)이 흐른다
노오란 내 가슴이
하얗게 여위기 전
그이는 오실까
당신의 맑은 눈물
내 땅에 떨어지면
바람에 날려 보낼
기쁨의 꽃씨
흐려오는
세월의 눈시울에
원색의 아픔을 씹는
내 조용한 숨소리
보고 싶은 얼굴이여

이해인 수녀의 시 ‘민들레의 영토(領土)’는 고독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자신의 삶을 꿋꿋이 살아가는 한 존재의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이 시는 민들레처럼 작은 존재이지만 강한 생명력을 지닌 화자가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사랑과 기다림, 희망을 노래하는 내용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Ⅰ. 시를 읽는 즐거움
1. 기도의 음악과 사랑의 깃발
첫 구절에서 시인은 "기도는 나의 음악"이라고 표현하며, 자신의 삶과 신앙이 음악처럼 울려 퍼지는 존재임을 강조합니다. 이어서 "사랑은 단 하나의 성서러운 깃발"이라 표현함으로써, 신앙과 사랑을 삶의 중심 가치로 삼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2. 좁은 길과 고독의 진주
"태초부터 나의 영토는 좁은 길이었다 해도"라는 부분은 삶의 길이 비록 힘들고 협소했을지라도, 그 안에서 "고독의 진주를 캐며" 살아왔음을 암시합니다. 이는 고독 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며 성장해 온 모습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3. 자연과의 교감
시인은 "바람이 스쳐가며 노래를 하면 푸른 하늘에게 피리를 불었지"라는 구절을 통해 자연과 교감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는 단순한 외로움의 표현이 아니라,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는 한 존재의 순수한 감성을 드러냅니다.
4. 기다림과 희망
"그이는 오실까"라는 문장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이'는 신, 혹은 사랑하는 존재일 수도 있고, 이상적 세계에 대한 기다림일 수도 있습니다.
5. 시간과 슬픔, 그리고 회복의 의지
마지막 부분에서 "세월의 눈시울에 원색의 아픔을 씹는 내 조용한 숨소리"라고 표현하며, 세월이 흐르며 겪는 슬픔과 아픔을 내면에서 곱씹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러한 고통 속에서도 삶의 희망과 회복을 포기하지 않는 자세를 시적으로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6. ‘민들레의 영토’가 의미하는 것
민들레는 척박한 환경에서도 강인하게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꽃입니다. 따라서 ‘민들레의 영토’는 좁고 외로운 길을 걷더라도 굳건히 버티며 자신의 삶을 꽃피우려는 의지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시는 이해인 수녀 특유의 깊은 신앙심과 자연을 통한 철학적 성찰, 그리고 인간적인 고독과 희망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Ⅱ. 시인이 독자에게 전하는 메시지
이해인 수녀의 시 「민들레의 영토」는 기도와 사랑, 고독과 기다림, 그리고 희망을 담은 깊은 울림을 주는 작품입니다. 이 시가 독자에게 주는 메시지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기도와 음악, 그리고 사랑의 성스러움
시인은 "기도는 나의 음악"이라고 표현하며, 기도를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음악 같은 존재로 인식합니다.
"사랑은 단 하나의 성서러운 깃발"이라는 구절에서는 사랑이 신성한 것이며, 그 사랑을 향한 믿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2. 좁고 고독한 길을 걸어가는 존재
"태초부터 나의 영토는 좁은 길이었다 해도"라는 부분에서, 시인은 자신의 삶이 외롭고 힘든 길이었음을 고백합니다.
하지만 "고독의 진주를 캐며"라는 구절처럼, 외로움 속에서도 의미를 찾고 성숙해 가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3.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기다림과 희망을 노래함
"바람이 스쳐가며 노래를 하면 / 푸른 하늘에게 피리를 불었지" 부분에서는 자연과 소통하는 시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이는 오실까", "당신의 맑은 눈물 내 땅에 떨어지면" 등의 표현은 기다림과 그리움을 상징하며, 신앙적인 기다림과도 연결될 수 있습니다.
4. 세월 속에서 묵묵히 살아가는 존재의 아픔과 희망
"흐려오는 세월의 눈시울에 / 원색의 아픔을 씹는" 구절에서는 시간이 흐르며 느끼는 삶의 아픔이 드러납니다.
하지만 마지막 "보고 싶은 얼굴이여"라는 구절에서, 기다림 끝에 만날 존재에 대한 희망과 사랑을 잃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이 시는 신앙적인 삶을 사는 이들에게는 믿음과 희망을, 고독을 겪는 이들에게는 위로를, 그리고 사랑을 기다리는 이들에게는 인내와 아름다움을 전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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