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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시감상37

[명시감상] 박두진의 「해」 희망에 찬 해가 우리 마음에 솟아나길‥‥ 「해」박두진 해야 솟아라해야 솟아라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너머산너머서어둠을 살라 먹고산 너머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이글이글 애띤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달밤이 싫여달밤이 싫여눈물 같은 골짜기에 달밤이 싫여아무도 없는 뜰에 달밤이 나는 싫여……. 해야고운 해야늬가 오면 늬가사 오면나는 나는 청산이 좋아라.훨훨훨 깃을 치는 청산이 좋아라.청산이 있으면 홀로래도 좋아라. 사슴을 따라사슴을 따라양지로 양지로 사슴을 따라사슴을 만나면 사슴과 놀고,칡범을 따라칡범을 따라칡범을 만나면 칡범과 놀고……. 해야고운 해야해야 솟아라.꿈이 아니래도 너를 만나면꽃도 새도 짐승도 한자리에 앉아워어이 워어이 모두 불러 한자리 앉아애띠고 고운 날을 누려 보리라. Ⅰ. 시를 읽는 즐거움박두진의 시 ‘해’는 .. 2025. 1. 11.
데이비드 L. 웨더포드 「더 느리게 춤추라」 삶은 달리기 경주가 아니다 더 느리게 춤추라데이비드 L. 웨더포드 회전목마 타는 아이들을 바라본 적 있는가.아니면 땅바닥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에귀 기울인 적 있는가.​펄럭이며 날아가는 나비를 뒤따라간 적은.저물어 가는 태양빛을 지켜본 적은.​속도를 늦추라.너무 빨리 춤추지 말라.시간은 짧고,음악은 머지않아 끝날 테니.​하루하루를 바쁘게 뛰어다니는가.누군가에게 인사를 하고서도대답조차 듣지 못할 만큼.​하루가 끝나 잠자리에 누워서도앞으로 할 백 가지 일들이머릿속을 달려가는가.​속도를 늦추라.너무 빨리 춤추지 말라.시간은 짧고,음악은 머지않아 끝날 테니.​아이에게 말한 적 있는가.내일로 미루자고.그토록 바쁜 움직임 속에 아이의 슬픈 얼굴은 보지 못했는가.​어딘가에 이르기 위해 그토록 서둘러 달려갈 때그곳으로 가는 즐거움의 절반을 놓치.. 2025. 1. 8.
[명시감상] 안도현 「그대에게 가고 싶다」 나도 맑은 사람이 되어, 그대에게 가고 싶다안도현 ​그대에게 가고 싶다해 뜨는 아침에는 나도 맑은 사람이 되어그대에게 가고 싶다그대 보고 싶은 마음 때문에밤새 퍼부어대던 눈발이 그치고오늘은 하늘도 맨 처음인 듯 열리는 날나도 금방 헹구어낸 햇살이 되어그대에게 가고 싶다그대 창가에 오랜만에 볕이 들거든긴 밤 어둠 속에서 캄캄하게 띄워 보낸내 그리움으로 여겨다오사랑에 빠진 사람보다 더 행복한 사람은 그리움으로 하나로 무장무장가슴이 타는 사람 아니냐. ​진정 내가 그대를 생각하는 만큼새날이 밝아오고진정 내가 그대 가까이 다가서는 만큼이 세상이 아름다워질 수 있다면그리하여 마침내 그대와 내가 하나 되어 우리라고 이름 부를 수 있는 그날이 온다면봄이 올 때까지는 저 들에 쌓인 눈이우리를 덮어줄 따스한 이불이라는 것도나는 잊지 않으리. ​.. 2025. 1. 1.
[명시감상] 김춘수의 「꽃」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꽃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그에게로 가서 나도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무엇이 되고 싶다.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Ⅰ. 시가 있는 풍경김춘수의 시 「꽃」은 이름과 존재, 그리고 관계의 의미를 깊이 탐구한 작품으로, 현대 한국 문학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이 시는 이름을 불러주는 행위를 통해 존재가 확립되고, 그 관계 속에서 본질적인 의미와 아름다움이 발생함을 노래합니다. 1. 존재의 본질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는 이름이 불.. 2024. 12. 29.
[명시감상]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동토에서 빛을 찾아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한 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너는 삼단 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마른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 2024. 12. 26.
[명시감상] 랜터 윌슨 스미스의 「이 또한 지나가리라」 삶에 대한 통찰과 철학 이 또한 지나가리라랜터 윌슨 스미스 ​큰 슬픔이 거센 강물처럼네 삶에 밀려와마음의 평화를 산산조각 내고 가장 소중한 것들을네 눈에서 영원히 앗아갈 때면네 가슴에 대고 말하라"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끝없이 힘든 일들이네 감사의 노래를 멈추게 하고기도하기에도 너무 지칠 때면 이 진실의 말로 하여금네 마음에서슬픔을 사라지게 하고 힘겨운 하루의무거운 짐을 벗어나게 하라“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행운이 너에게 미소 짓고하루하루가환희와 기쁨으로 가득 차 ​근심 걱정 없는 날들이스쳐갈 때면 세속의 기쁨에 젖어안식하지 않도록 ​이 말을 깊이 생각하고가슴에 품어라"이 또한 지나가리라" ​너의 진실한 노력이명예와 영광 그리고지상의 모든 귀한 것들을 ​네게 가져와웃음을 선사할 때면 인생에서가장 오래 지속될 일도,가장 웅대한 .. 2024. 12. 23.
[명시감상] 헤르만 헤세 「내 젊음의 초상」 연말이면 돌아보는 자화상 내 젊음의 초상헤르만 헤세​이제는 전설이 된 먼 과거로부터내 젊음 초상이 나를 보며 묻는다.지난날 태양의 밝아짐에무엇이 반짝이며 불타고 있었는가를 ​지난날 내 앞에 비춰진 길은내게 많은 번민의 시간과 커다란 변환을 가져왔다.그 길을나는 다시 걷고 싶지 않다. ​나는 나의 길을 성실히 걸었고추억은 보물과 같은 것이다.잘못도 실패도 많았지만나는 그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의 시 ‘내 젊음의 초상’은 성찰적이고 회고적인 정서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이 시는 젊은 시절을 돌아보며, 삶의 고뇌와 변화, 그리고 그로 인한 성장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Ⅰ. 시를 읽는 즐거움1. 젊음의 초상과 과거에 대한 대화시의 첫 부분에서는 "내 젊음 초상이 나를 보며 묻는다"고 표.. 2024. 12. 22.
[명시감상]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김지하 신새벽 뒷골목에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오직 한 가닥 있어타는 가슴속 목마름의 기억이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 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발자욱 소리 호르락 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 소리신음 소리 통곡 소리 탄식 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살아오는 삶의 아픔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 묻은 얼굴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백묵으로 서툰 솜씨로쓴다. 숨죽여 흐느끼며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타는 목마름으로타는 목마름으로민주주의여 만세김지하의 시 ‘타는 목.. 2024. 12. 14.
[명시감상] 최승호의 「대설주의보」 백색의 계엄령 대설주의보최승호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들제설차 한 대 올 거 없는깊은 백색의 골짜기를 메우며굵은 눈발은 휘몰아치고쪼그마한 숯덩이만 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굴뚝새가 눈보라 속으로 날아간다 길 잃은 등산객들 있을 듯외딴 두메 마을 길 끊어 놓을 듯은하수가 펑펑 쏟아져 날아오듯 덤벼드는 눈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쪼그마한 숯덩이만 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날아온다 꺼칠한 굴뚝새가서둘러 뒷간에 몸을 감춘다그 어디에 부리부리한 솔개라도 도사리고 있다는 것일까 길 잃고 굶주리는 산짐승들 있을 듯눈더미의 무레로 소나무 가지들이 부러질 듯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때죽나무와 때 끓이는 외딴집 굴뚝에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과 골짜기에 눈보라가 내리는백색의 계엄.. 2024. 1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