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自画像) |
윤동주 |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윤동주의 「자화상」은 한 청년이 외딴 우물 속을 들여다보며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과정을 담고 있는 시입니다. 우물이라는 상징적 공간을 통해 시인은 ‘자아의 내면’을 응시합니다. 시의 화자는 반복해서 우물을 들여다보고 돌아서기를 반복하며 자기 자신을 ‘미워했다가, 가엾어했다가, 그리워하는’ 감정의 복잡한 층위를 보여줍니다. 이는 곧 자아에 대한 깊은 고뇌와 반성, 그리고 인간 존재의 고독을 잘 드러냅니다.
1. 시 해설
(1) 우물의 상징
우물은 단순한 자연물이 아니라 ‘자기 성찰의 공간’을 뜻합니다. 고요하고 깊은 곳, 외딴곳에서 혼자 마주하는 우물은 자신의 진짜 모습을 비추는 거울 같은 장소이자, 영혼의 깊이를 상징합니다.
(2) 달, 구름, 바람, 가을
이 자연적 이미지들은 우물 속 ‘자연의 조화’를 이루며 이상적인 세계 또는 기억과 감정의 풍경을 상징합니다. 특히 가을은 윤동주 시에서 자주 등장하는 계절로, 성찰과 쓸쓸함, 그리고 ‘추억’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3) 사나이 = 자기 자신
시인은 우물 속 사나이를 바라보며 감정을 느끼지만, 사실 그 사나이는 바로 자기 자신의 모습입니다. 그를 미워했다가, 가엾어하고, 그리워하는 복잡한 심정은 자아에 대한 혼란, 고뇌, 그리고 자책과 연민을 보여줍니다.
(4) 반복 구조의 의미
시는 같은 구조와 표현이 반복되며 내면의 감정이 점점 깊어지는 흐름을 보여줍니다. 이는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내면의 대화를 암시하며, 그 감정이 단선적이지 않고 순환적임을 나타냅니다.
2. 주제 의식
이 시는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는 인간의 성찰과 고독, 자기 존재에 대한 질문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윤동주는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한 청년으로서 순수한 자아를 지키려는 고뇌를 시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3. 감상 포인트
시 속 ‘사나이’에 대한 감정 변화는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입니다. 이 시를 읽으며 우리는 ‘나는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단순히 우울한 시가 아니라, 깊은 성찰과 정서의 시로 읽을 수 있습니다.
4. 시인의 생애
(1) 출생과 성장
- 1917년 12월 30일, 북간도 명동촌(현재 중국 지린성 연변)에서 태어남.
- 기독교 가정에서 성장하며 윤동주라는 이름처럼 바른 뜻을 지닌 아이로 자라남.
- 어려서부터 글쓰기와 문학에 소질을 보이며 정지용, 이광수, 백석 등의 문학을 접함.
(2) 학업과 문학 활동
- 평양 숭실중학교, 용정의 광명학교,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에서 공부
- 학창 시절부터 시를 꾸준히 쓰며 문학적 재능을 키움.
- ‘카톨릭 정신’, ‘기독교적 순수함’, ‘양심’ 등을 문학 속 주제로 자주 다룸.
(3) 일제 강점기의 고뇌
- 시대는 일제강점기. 윤동주는 조국을 잃은 젊은이로서 식민지 현실에 대한 죄책감과 분노, 무기력함을 품음.
- 이름조차 ‘히라누마 도주(平沼東柱)’로 창씨개명해야 했던 현실에 괴로움을 느낌.
- 항일운동에는 직접 참여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시를 통해 내면적 저항을 함.
(4) 죽음
- 1943년, 일본 유학 중 독립운동 혐의로 체포되어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
- 1945년 2월 16일, 해방을 불과 몇 개월 앞두고 27세 나이로 옥사
- 정확한 사망 원인은 미스터리이나, 생체 실험 의혹도 있음.
5. 윤동주의 문학 세계
(1) 대표 시집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 사후 3년 뒤인 1948년, 친구 정병욱이 보관하고 있던 원고를 정리해 출간
- 「서시」, 「별 헤는 밤」, 「자화상」, 「참회록」 등 수많은 명시 수록
-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집 중 하나로 손꼽힘.
(2) 문학적 특징
- 자아 성찰과 고백
→ 자신의 나약함, 죄책감, 고뇌를 담담히 고백함.
- 순수한 정신과 종교적 이미지
→ 기독교 신앙과 양심을 바탕으로 한 순결한 세계를 추구함.
- 우수(憂愁)와 고독, 그리움
→ 조국에 대한 그리움과 시대적 절망감이 뒤섞임.
- 자연 이미지와 서정성
→ 하늘, 별, 바람, 우물, 가을 등 자연을 통한 내면의 표현.
(3) 문학적 의의
- 저항시인이자, 순수서정시인으로 평가받음.
- 당시 ‘무력한 침묵’처럼 보였던 시가 오히려 시대를 향한 도덕적 목소리로 인정받음.
- 21세기에도 여전히 청년 정신, 도덕적 정직함, 시적 감수성의 상징
윤동주는 ‘시를 쓰는 것’이 단순한 창작이 아니라 삶의 자세이자 실천임을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짧은 생은 비극적이었지만, 윤동주의 시는 우리 시대에 ‘자기 성찰의 거울’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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