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랑캐꽃 |
이용악 |
─ 긴 세월을 오랑캐와의 싸흠에 살았다는 우리의 머언 조상들이 너를 불러 ‘오랑캐꽃’이라 했으니 어찌 보면 너의 뒷모양이 머리태를 드리인 오랑캐의 뒷머리와도 같은 까닭이라 전한다 ─
아낙도 우두머리도 돌볼 새 없이 갔단다
도래샘도 띳집도 버리고 강 건너로 쫓겨갔단다
고려 장군님 무지 무지 쳐들어와
오랑캐는 가랑잎처럼 굴러갔단다
구름이 모여 골짝 골짝을 구름이 흘러
백 년이 몇백 년이 뒤를 이어 흘러갔나
너는 오랑캐의 피 한 방울 받지 않았건만
오랑캐꽃
너는 돌가마도 털메투리도 모르는 오랑캐꽃
두 팔로 햇빛을 막아 줄게
울어 보렴 목 놓아 울어나 보렴 오랑캐꽃
이용악의 시 「오랑캐꽃」은 한국의 역사적 아픔과 민족 정서를 상징적인 꽃인 '오랑캐꽃'에 투영시켜 노래한 작품입니다. 이 시는 단순한 자연시가 아니라, 민족의 수난과 저항의 역사를 품고 있는 강렬한 역사시이자 상징시입니다. 시 전체를 해석하고 감상하려면 다음과 같은 점에 주목할 수 있습니다.
1. 시의 내면 들여다보기
(1) ‘오랑캐꽃’의 상징
‘오랑캐꽃’은 흔히 '제비꽃'으로 알려진 식물입니다. 시의 화자는 이 꽃을 ‘오랑캐’라는 부정적인 이미지와 연결시킵니다. 조상들이 이 꽃을 그렇게 부른 이유는 ‘머리태를 드리운 오랑캐의 뒷머리’를 연상시킨다 하며, 외래성과 이질성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시인은 “너는 오랑캐의 피 한 방울 받지 않았건만”이라며, 이 꽃이 오랑캐와는 무관한 존재임을 강조합니다. 이것은 외형으로만 판단하는 편견과 억압,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시인의 태도를 보여줍니다.
(2) 역사적 맥락
고려 장군이 오랑캐를 물리친 장면은 민족의 저항 정신을 강조합니다. 아낙과 우두머리, 도래샘, 띳집 등 민중의 삶의 터전이 파괴되고 쫓겨나는 모습은 외세의 침입과 전란 속 민중의 고통을 표현합니다.
(3) 자연과 시간의 흐름
“구름이 모여 골짝 골짝을 구름이 흘러 / 백 년이 몇백 년이 뒤를 이어 흘러갔나”라는 구절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민족의 수난사와 그 아픔이 반복되어 왔음을 시사합니다.
(4) 연민과 위로
마지막 연은 “두 팔로 햇빛을 막아 줄게 / 울어 보렴 목 놓아 울어나 보렴 오랑캐꽃”이라며, 꽃을 위로하는 듯한 태도를 보입니다. 이는 억울하게 멸시받아 온 존재, 나아가 우리 민족의 억눌린 감정을 다독이는 시인의 음성으로 읽힐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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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감상 포인트
‘오랑캐꽃’은 단지 식물이 아니라, 정체성과 오해, 고통과 회복의 상징입니다. 역사의 고난을 겪으며도 살아남은 민족성과 자연의 생명력을 함께 노래하고 있습니다. 억눌린 존재에 대한 연민과 위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로 다가옵니다.
이용악의 시 세계는 민족의식과 민중적 감수성이 살아 숨 쉬는 공간입니다. 그의 시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싶다면 역사적 맥락과 함께 상징을 해석해보는 연습이 중요합니다.
3. 시인의 삶과 문학
이용악(李庸岳, 1914~1971)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분단 시기를 거치며 활동한 대표적인 민족저항시인입니다. 그의 시 세계는 민족의 고난,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 민중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전개되며, 참여시의 전통을 잇는 중요한 문학적 위치에 있습니다.
(1) 시인의 프로필
- 출생 : 1914년 함경북도 명천 출생
- 교육 : 일본 도쿄 니혼대학 법학과 중퇴
- 활동 : 일제강점기 동안 학생 운동과 사회주의 계열의 문학운동에 참여, 광복 후 북한에서 활동
- 사망 : 1971년 북한에서 사망
(2) 민족 현실에 대한 비판
일제 강점기의 억압적 현실과 민족의 고난을 직시하며 이를 시에 담아냈습니다.
시 「오랑캐꽃」처럼 일상적 사물을 통해 역사의 아픔을 상징화함.
(3) 농민과 민중에 대한 애정
시인의 시에는 도시보다는 농촌, 민중의 삶이 자주 등장합니다.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연대의식이 돋보입니다.
(4) 참여시의 성격
시를 단순한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현실 개혁을 위한 도구로 여김.
문학이 민중과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은 대표적인 ‘참여 시인’입니다.
(5) 문학적 의의
참여문학의 선구자로서 현실에 눈 감지 않고 사회의 아픔을 증언했습니다.
자연과 민중, 역사를 아우르는 시 세계로 한국 현대시 발전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해방 후 북한 문단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남한에서의 연구는 상대적으로 늦게 이루어졌지만, 그의 문학적 가치는 오늘날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이용악은 민족과 민중의 편에 서서 시로 싸웠던 사람입니다. 그의 시를 읽을 때, 그 안에 담긴 역사적 맥락과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함께 읽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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