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는 달밤에 |
윤곤강 |
빛나는 해와 밝은 달이 있기로
하늘은 금빛도 되고 은빛도 되옵니다
사랑엔 기쁨과 슬픔이 같이 있기로
우리는 살 수도 죽을 수도 있으오이다
꽃피는 봄은 가고 잎피는 여름이 오기로
두견새 우는 달밤은 더욱 슬프오이다
이슬이 달빛을 쓰고 꽃잎에 잠들기로
나는 눈물의 진주구슬로 이 밤을 새웁니다
만일 당신의 사랑을 내 손바닥에 담아
금방울 같은 소리를 낼 수 있다면
아아, 고대 죽어도 나는 슬프지 않겠노라
1. 시를 읽는 즐거움
윤곤강의 시 「꽃피는 달밤에」는 사랑의 기쁨과 슬픔, 그리고 자연의 변화 속에서 느끼는 인간의 감정의 깊이를 섬세하게 그려낸 서정시입니다. 아래에 시의 주요 구절을 중심으로 해설과 감상을 정리하였습니다.
(1) 자연과 사랑의 병치(倂置)
빛나는 해와 밝은 달이 있기로
하늘은 금빛도 되고 은빛도 되옵니다
첫 연에서는 자연의 이치, 즉 해와 달이 존재함으로써 하늘이 금빛과 은빛으로 물든다는 사실을 진술합니다. 이는 자연의 조화로운 변화이며, 동시에 그 아름다움 속에 인간의 감정도 함께 물든다는 암시입니다. ‘금빛’과 ‘은빛’이라는 고운 표현을 통해 시인은 자연의 찬란함과 동시에 사랑의 고귀함을 병치하고 있습니다.
(2) 사랑의 기쁨과 슬픔
사랑엔 기쁨과 슬픔이 같이 있기로
우리는 살 수도 죽을 수도 있으오이다
사랑이란 감정은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며, 인간의 존재 자체에 깊은 영향을 끼친다고 말합니다. ‘살 수도 죽을 수도 있다’는 표현은 사랑이 인간에게 얼마나 극단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지를 보여줍니다. 사랑의 감정이 삶과 죽음이라는 실존적 차원까지 끌어올려진 것입니다.
(3) 계절의 흐름과 정서의 변화
꽃피는 봄은 가고 잎피는 여름이 오기로
두견새 우는 달밤은 더욱 슬프오이다
여기서는 계절의 흐름을 통해 시간의 무상함과 그에 따른 정서의 변화가 강조됩니다. 봄은 사랑과 희망의 계절이고, 여름은 그에 대한 회상과 성숙의 계절입니다. 두견새(소쩍새)의 울음은 전통적으로 이별과 슬픔을 상징하는데, ‘달밤’이라는 배경과 어우러져 외로움이 더욱 깊게 느껴집니다.
(4)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에 대한 절절함
이슬이 달빛을 쓰고 꽃잎에 잠들기로
나는 눈물의 진주구슬로 이 밤을 새웁니다
이 구절은 은유적 표현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이슬’, ‘달빛’, ‘꽃잎’은 모두 섬세하고 감성적인 자연물로, 그 위에 잠든다는 것은 고요함 속에 스며든 감정을 의미합니다. 화자는 사랑의 그리움 속에 눈물을 진주처럼 흘리며 밤을 지샌다고 표현하여,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의 깊은 슬픔을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5) 사랑의 절정과 자기희생
만일 당신의 사랑을 내 손바닥에 담아
금방울 같은 소리를 낼 수 있다면
아아, 고대 죽어도 나는 슬프지 않겠노라
마지막 연은 사랑의 절정을 노래합니다. 만약 사랑이 현실로 이루어진다면, 죽음조차 슬프지 않을 정도로 완전한 행복이 된다는 고백입니다. ‘금방울 같은 소리’는 순수하고 맑은 사랑의 소리를 상징하며, 그 사랑의 완전함을 통해 생의 모든 아픔이 상쇄될 수 있음을 말합니다.
2. 시 감상
「꽃피는 달밤에」는 자연과 사랑, 삶과 죽음, 기쁨과 슬픔을 유려한 언어로 교차시키며, 사랑이라는 감정의 복합성과 그 깊이를 아름답게 표현합니다. 전통적인 정서와 서정시 특유의 이미지가 어우러져, 마치 고요한 달밤에 앉아 한 편의 사랑 이야기를 듣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이 시는 사랑의 숭고함과 그로 인한 고통을 함께 담아낸 진솔한 고백이며, 한국적 정서와 계절감, 그리고 자연에 기대어 인간의 감정을 섬세히 비추는 명시로 평가됩니다.
'감동 시(詩, Poem)'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명시감상] 김영랑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서정시의 정수 (3) | 2025.05.29 |
---|---|
[명시감상] 이용악의 「오랑캐꽃」 역사적 아픔과 민족정서를 상징하는 꽃 (12) | 2025.05.25 |
아르튀르 랭보의 「지옥에서 보낸 한 철」 천재 시인의 마지막 작품 (7) | 2025.05.18 |
[명시감상] 정지용의 「향수」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4) | 2025.05.11 |
푸시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3) | 2025.05.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