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너머 남촌에는 |
김동환 |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
꽃 피는 사월이면 진달래 향기
밀 익는 오월이면 보리 내음새
어느 것 한 가진들 실어 안 오리
남촌서 남풍 불 제 나는 좋데나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저 하늘 저 빛깔이 저리 고울까?
금잔디 넓은 벌엔 호랑나비 떼
버들밭 실개천엔 종달새 노래
어느 것 한 가진들 들려 안 오리
남촌서 남풍 불 제 나는 좋데나
산 너머 남촌에는 배나무 있고
배나무꽃 아래엔 누가 섰다기
그리운 생각에 영에 오르니
구름에 가리어 아니 보이나
끊였다 이어 오는 가느단 노래
바람을 타고서 고이 들리네
김동환의 「산 너머 남촌에는」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정겨운 고향의 정서를 그리워하는 서정시입니다. 시인은 ‘남촌’을 직접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그곳을 둘러싼 자연 풍경, 향기, 소리, 감정을 통해 이상향 혹은 그리운 사람이 있는 공간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시 전체에 흐르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성은 독자로 하여금 ‘그리움’의 정서를 함께 느끼게 합니다.
1. 시를 읽는 즐거움
(1) 1연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
꽃 피는 사월이면 진달래 향기
밀 익는 오월이면 보리 내음새
어느 것 한 가진들 실어 안 오리
남촌서 남풍 불 제 나는 좋데나
‘남촌’은 자연의 아름다움이 시작되는 곳입니다. 봄이 오면 그곳에서 진달래 향기와 보리 냄새가 남풍을 타고 불어옵니다. 시적 화자는 남촌의 존재 자체에 호기심과 동경을 느끼고 있으며, 남쪽 바람에 실려오는 모든 것이 좋다고 느낍니다.
(2) 2연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저 하늘 저 빛깔이 저리 고울까?
금잔디 넓은 벌엔 호랑나비 떼
버들밭 실개천엔 종달새 노래
어느 것 한 가진들 들려 안 오리
남촌서 남풍 불 제 나는 좋데나
자연의 색감과 소리가 중심입니다. 하늘의 빛깔, 나비의 군무, 종달새의 노래는 모두 남촌의 풍경을 이상화합니다.
이 역시 직접적인 설명보다는 감각적 이미지로 그려진 남촌의 정경을 통해 그곳이 누군가 그리운 이가 있는 곳임을 암시합니다.
(3) 3연
산 너머 남촌에는 배나무 있고
배나무꽃 아래엔 누가 섰다기
그리운 생각에 영에 오르니
구름에 가리어 아니 보이나
끊였다 이어 오는 가느단 노래
바람을 타고서 고이 들리네
마지막 연에서 드디어 ‘그리운 사람’의 존재가 암시됩니다. 배나무꽃 아래 누가 있었다는 말은 그리운 이의 추억을 떠올리게 합니다.
‘영에 오르니’는 시적 화자가 기억이나 감정의 절정에 이른다는 뜻이며,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 것은 그리운 존재가 멀리 있고, 손에 닿지 않는 현실임을 의미합니다.
끝 구절의 ‘가느단 노래’는 마치 그리움을 담아 보내는 편지 혹은 바람에 실린 회상의 소리처럼 읽히며, 시의 정서적 마무리를 제공합니다.
이 시는 자연과 정서, 감각이 어우러진 전형적인 서정시로, 시인은 ‘남촌’을 통해 이상향이자 그리운 존재가 있는 공간을 보여줍니다. 직접적으로 누구를 말하지는 않지만, 그리움과 사랑, 정겨움이 시 전체에 진하게 배어 있어 한국 전통의 정서와 정감 어린 향수를 자극합니다.
2. 작가의 삶과 문학
김동환(金東煥, 1901~?)은 일제강점기 활동한 대표적인 서정 시인으로, 한국 문학사에서 초기 근대시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입니다. 그의 시는 전통적인 정서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근대적인 감각과 자연 묘사가 뛰어나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았습니다.
(1) 주요 정보 정리
- 출생 : 1901년, 함경북도 회령 출생
- 활동 시기 : 1920년대~1930년대 주로 활동
- 대표 작품 : 「산너머 남촌에는」, 「국경의 밤」, 「백두산」, 「붉은 산」 등
(2) 문학적 특징
전원적 서정시의 대가로 「산너머 남촌에는」처럼 고향, 자연, 정서적 그리움을 담은 시가 많습니다.
시각, 후각, 청각 등 감각적 이미지의 활용으로 자극하는 표현이 뛰어나며, 감성을 자극하는 시어를 잘 사용합니다.
이전의 개화기 문학과는 달리, 자연과 인간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냄으로써 근대시의 전환점이 되어 한국 시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습니다.
김동환은 일제강점기 후반 친일 행적이 일부 드러나며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일제의 전쟁 협조를 장려하는 글을 발표하거나 ‘국민문학자’로 불리며 활동한 기록이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문학성과 역사적 평가가 병존하는 인물로, 문학사에서는 비판적 균형 감각으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김동환은 아름다운 언어로 고향과 그리움을 노래한 서정시인이자, 근대 한국시의 전개에 중요한 자취를 남긴 인물입니다. 동시에, 시대적 한계 속에서 복합적인 평가를 받는 작가로서 기억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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