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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 시(詩, Poem)

[명시감상] 도종환 시인의 「접시꽃 당신」 사랑의 상실이 주는 절절한 슬픔

by 램 Ram 2025.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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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꽃 당신

도종환

 

옥수수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 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나갑니다

 

씨앗들도 열매로 크기엔

아직 많은 날을 기다려야 하고

당신과 내가 갈아엎어야 할

저 많은 묵정밭은 그대로 남았는데

논두렁을 덮는 망촛대와 잡풀가에

넋을 놓고 한참을 앉았다 일어섭니다

 

마음 놓고 큰 약 한번

써보기를 주저하며

남루한 살림의 한구석을

같이 꾸려오는 동안

당신은 벌레 한 마리

함부로 죽을 줄 모르고

악한 얼굴 한 번 짓지 않으며

살려했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내가 함께

받아들여야 할 남은 하루하루

하늘은 끝없이 밀려오는

가득한 먹장구름입니다

 

처음엔 접시꽃 같은 당신을 생각하며

무너지는 담벼락을 껴안은 듯

주체할 수 없는 신열로 떨려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에게

최선의 삶을 살아온 날처럼,

부끄럼 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마지막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함을 압니다

 

우리가 버리지 못했던

보잘것없는 눈 높음과 영욕까지도

이제는 스스럼없이 버리고

내 마음의 모두를

더욱 아리고 슬픈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날들이 짧아진 것을

아파해야 합니다

 

남은 날은 참으로 짧지만

남겨진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듯 살 수 있는 길은

우리가 곪고 썩은 상처의 가운데에

있는 힘을 다해 맞서는 길입니다

 

보다 큰 아픔을 껴안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엔 언제나 많은데

나 하나 육신의 절망과 질병으로 쓰러져야 하는 것이

가슴 아픈 일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콩댐 한 장판같이 바래어 가는

노랑꽃 핀 얼굴 보며

이것이 차마 입에

떠올릴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마지막 성한 몸뚱아리 어느 곳 있다면

그것조차 끼워 넣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

뿌듯이 주고 갑시다

 

기꺼이 살의 어느 부분도

떼어주고 가는 삶을

나도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옥수수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굵어집니다

 

이제 또 한 번의 저무는 밤을

어둠 속에서 지우지만

이 어둠이 다하고

새로운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 있습니다.


ⓒ네이버이미지
접시꽃 ⓒ네이버이미지


 

도종환 시인의 시 접시꽃 당신은 병든 아내를 지켜보며 삶과 죽음, 사랑과 이별, 그리고 인간 존재의 의미를 성찰하는 아름답고도 애절한 연가입니다. 이 시는 특히 암 투병 중인 아내를 돌보는 남편의 시선에서 시작되어, 삶의 끝자락에서 남은 시간을 함께 살아내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깊이 있게 그려냅니다.


1. 시의 주요 테마

접시꽃 당신은 삶의 덧없음과 그 속에서의 사랑, 그리고 상실의 아픔을 깊이 있게 표현한 작품입니다. 이 시는 자연과 인간의 삶, 그리고 그 안에서의 관계를 통해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을 성찰합니다.

 

(1) 생명과 상실

시는 옥수수잎에 떨어지는 빗방울로 시작하여, 생명의 흐름과 그 속에서 잃어버리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머리칼이 빠지는 것처럼, 생명은 서서히 빠져나가며, 이는 우리 모두가 겪는 자연스러운 과정입니다.

 

(2) 시간의 덧없음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라는 구절은 시간의 유한성을 강조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일깨워 줍니다.


 

출판 실천문학사
출판 실천문학사


(3) 사랑과 희생

시 속 주인공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희생하고, 함께 살아가는 삶의 의미를 찾습니다. "기꺼이 살의 어느 부분도 떼어주고 가는 삶"은 진정한 사랑의 본질을 드러냅니다.

 

(4) 자연과의 연결

자연의 요소들, 예를 들어 빗소리와 낙엽 등은 시의 감정과 분위기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 줍니다. 이는 인간의 삶과 자연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2. 감상 포인트

(1) 상징과 비유

시에서 사용된 다양한 상징들, 예를 들어 "접시꽃"은 사랑과 순수함을 나타내며, "먹장구름"은 불안과 두려움을 상징합니다. 이러한 상징들은 독자가 시의 감정을 더욱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2) 감정의 깊이

도종환 시인은 감정의 깊이를 섬세하게 표현하며, 독자로 하여금 공감하게 만듭니다. 특히, "남겨진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듯 살 수 있는 길"이라는 구절은 삶의 태도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합니다.


접시꽃 당신은 삶의 의미와 사랑의 힘, 그리고 상실의 아픔을 진솔하게 그려낸 시입니다. 도종환 시인은 자연을 통해 인간의 삶을 성찰하게 하며, 독자에게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이 시를 통해 우리는 사랑의 소중함과 함께 살아가는 것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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