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ver-site-verification: navera4e49777b03aa60823211a65b5d967a9.html 양현근의 「기다림 근처」에는 늘 사람의 온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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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 시(詩, Poem)

양현근의 「기다림 근처」에는 늘 사람의 온기가 있다

by 램 Ram 2025. 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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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근처

양현근

 

밤늦은 시간 버스정류장에서

취객 몇이 비틀거리는 방향을 서로 가누고 있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버스는 올 것인지

기다리는 버스는 대체 오기나 할 것인지

알려주거나 물어오는 이도 없고

누군가는 기다림을 접고 정류장을 빠져나가고

또 누군가는 무작정 기다린다

 

이를테면 누군가의 환한 이마,

누군가의 서툰 기별이 사뭇 그립기도 한 시간

발을 헛디딘 활엽들이 사그락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불빛을 세우기 위해 차도로 내려선다

 

목을 길게 늘려도 계절은 아직 제 자리

한 계절 돌아와도 다시 제 자리

한때 누군가가 그토록 간절했던 시간들

환했던 우리들의 스물이거나 서른하고도 몇이거나

이제는 모두 서둘러 떠나간 정류장에서

세상과 불화한 담배꽁초만 수북하니 뒹구는데

 

맨발로 서 있던 기다림의 근처

바퀴 울음소리 캄캄하게 젖어가도록

아직도 망설이는 사람들 그믐처럼 깊어가고

가로등 그림자가 어두워진 발등을 베고

고단한 몸을 가만가만 누이고 있다


ⓒ네이버이미지
ⓒ네이버이미지


 

양현근 시인의 기다림 근처정류장이라는 일상적 장소를 배경으로, 기다림의 본질, 시간의 흐름, 그리고 사람들이 겪는 조용한 상실과 희망의 잔향을 매우 섬세하게 담아낸 시입니다. 밤늦은 정류장은 현실적으로는 버스를 기다리는 공간이지만, 시인의 손에서 삶의 방향을 잃은 사람들, 떠나지 못한 마음, 제자리로 되돌아오는 시간을 비추는 상징적 공간으로 확장됩니다.


1. 시의 주요 이미지와 의미 해설

(1) 정류장 : ‘머무름’과 ‘떠남’의 경계

정류장은 떠날 수도 있고 멈춰 있을 수도 있는 모호한 장소입니다.

시 속 사람들은 버스를 기다리지만 버스가 올지 확신할 수 없고, 누군가는 포기하고 떠나며, 또 누군가는 무작정 기다립니다.

삶에서 목표를 잃고 방황하는 인간 존재의 모습이 투영됩니다.

 

(2) “누군가의 환한 이마, 누군가의 서툰 기별”

갑자기 스쳐 지나가는 개인적 기억이나 인간적 온기입니다.

밤과 기다림 속에서 더욱 선명해지는 잃어버린 관계와 그리움이 떠오릅니다.

 

(3) 떨어진 활엽수의 이미지

발을 헛디딘 활엽들은 방향을 잃은 사람들, 계절의 흐름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떨어져 나오는 것들을 상징합니다.

사그락 소리는 시간의 흐름이 만들어내는 낯선 쓸쓸함을 전합니다.

 

(4) “한 계절 돌아와도 다시 제자리”

시간은 흐르지만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 제자리걸음의 삶.

모든 변화가 일어나도 결국 익숙한 자리로 돌아오는 인간의 반복적 시간 구조가 드러납니다.

 

(5) “담배꽁초만 수북하니 뒹구는데”

이미 떠난 사람들의 흔적,

또는 시간이 스쳐 간 자리에 남는 허무의 잔재를 상징합니다.

 

(6) “바퀴 울음소리 캄캄하게 젖어가도록”

버스의 바퀴 소리가 울음이 되고 젖어간다는 표현을 통해 정류장의 분위기는 더욱 슬픔·기다림·불확실성의 감정으로 채워집니다.


ⓒ네이버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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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작품의 주제 의식

(1) 기다림의 철학

이 시에서 기다림은 단순히 버스를 기다리는 행위를 넘어 미래, 관계, 삶의 의미를 기다리는 인간의 근본적 태도로 확장됩니다.

 

(2) 시간의 무력감과 되돌아오는 순환

계절은 돌아오지만 제자리이며, 기다림은 깊어지지만 출발은 쉽지 않습니다.

삶에서의 변화가 생각만큼 일어나지 않음을 담담하게 드러냅니다.

 

(3) 현실과 이상 사이의 균열

정류장에서의 몇몇 이미지는 비틀거리는 취객, 담배꽁초, 어두운 가로등 같이 가혹한 현실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누군가의 환한 이마, 서툰 기별 같은 따뜻한 기억과 희미한 희망도 공존합니다.


ⓒ네이버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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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비평적 관점

(1) 도시적 감수성과 서정의 결합

이 작품은 도시의 밤이라는 배경이 가진 차가움 속에서 서정적인 정서의 온기를 포착합니다. 특히 정류장이라는 공간의 상징성이 현대인의 내면과 맞물리며, 일상적 소재를 통해 존재론적 질문까지 이끌어냅니다.

 

(2) 감각적 묘사와 은유의 절제

양현근 시인은 과도한 감정 표현 없이 활엽’, ‘정류장’, ‘그믐’, ‘그림자 등 시각적·청각적 이미지를 절제 있게 사용하여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감정을 채워 넣게 합니다.

이는 좋은 현대시의 미덕을 잘 보여줍니다.

 

(3) 현대인의 ‘정서적 지체’를 포착

떠날 용기를 내지 못한 사람들,

확신 없이 기다리는 사람들,

언제 올지 모르는 버스를 향한 체념 섞인 시선은 21세기 도시인의 불안, 지체, 고독을 깊게 담고 있습니다.


ⓒ네이버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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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감상평

이 시를 읽고 나면 밤늦은 정류장의 풍경이 단순한 도시 이미지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한번쯤 서 있었던 삶의 어느 지점처럼 느껴집니다.

버스를 기다리듯, 누군가를 기다리고, 변화를 기다리고, 용기를 기다리며 서성였던 순간들이 떠오릅니다.

 

정류장에 남은 담배꽁초는 이미 지나가 버린 선택과 후회의 흔적처럼 보이고, 가로등 아래 길어진 그림자는 여전히 제자리에서 망설이는 우리의 마음을 닮았습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기다림의 근처에는 늘 사람의 온기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누군가의 환한 이마, 서툰 기별 같은 사소한 온기들이 사람을 다시 버티게 하고, 다시 한 번 버스를 기다리게 합니다.

 

이 시는 삶이 어느 순간 멈춰버린 것처럼 느껴지고, 시간이 제자리를 맴돌 때 찾아오는 고요한 슬픔을 아주 정교하게 드러내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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